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선집 3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재미있다고 추천을 너무 많이 받아서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 이렇게 좋은 책이 작년의 마지막 독서였다. 나름 의미있고 뿌듯한 마무리인 것 같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길에 오른 어린 싯다르타와 그를 따르는 친구 고빈다. 그들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구했고, 사문들을 따라 재물 없이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 열반에 오른 고타마의 말씀도 듣는다. 고타마의 제자가 되기로 한 고빈다와 달리 싯다르타는 다시 수행길에 오른다. 그는  사랑과 쾌락을 배우기도 하고, 장사를 하며 물욕에 몰락하기고 한다.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유치하고 어리석은 애정에 마음의 상처를 입다가도 가난한 뱃사공에게서 삼라만상의 진리를 배우기도 한다.


진리는 어디에 있으며, 자아란 결국 무엇일까? 열반에 오르는, 경지에 다다르는 깨달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평소 좋아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또 다른 작품을 이렇게 접하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 말이 필요없는 참 좋은 작품이었다. 제목이 <싯다르타>인지라 석가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석가의 또다른 삶이 있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리따분할 수 있는 부처의 생애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쓸 수 있다니.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읽은 소설이었다.

그러나 자아나 가장 내적인 것과 같은 궁극적인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15p)

아침의 첫 햇살이 방 안을 비추었다. 그 브라만은 싯다르타의 무릎이 약간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싯다르타의 얼굴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싯다르타가 이제 더 이상 자기 곁에 없음을, 집에 없음을, 자신에게서 떠나 버렸음을 깨달았다. (23p)

"... 네가 그곳에 계속 머물렀더라면 얼마 안 가 물 위를 걷는 법도 배웠을 거야."

"나는 물 위를 걸을 마음은 하나도 없어," 싯다르타가 말했다. "늙은 사문들이나 그런 재주들에 만족하라지." (39p)

‘... 나는 자아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어.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단지 자아를 속이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쳤을 뿐이야. 정말이지 자아만큼 내가 몰두한 화두는 없었어. 내가 살아 있다는 수수께끼, 내가 모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남다른 존재라는 이 수수께끼, 내가 싯다르타라고 하는 이 수수께끼만큼 나를 몰두하게 만든 것은 없었어! 그런데도 나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나 자신, 싯다르타에 대해 가장 적게 알고 있어!‘ (55p)

"다들 그런 식으로 살아가지요. 누구든 남에게서 받고 남에게 주며 살아가지요.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요." (87p)

그러나 오늘은 강의 모든 비밀 중 단 하나만 볼 수 있었고 그것에 사로잡혔다.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고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언제 어느 때나 똑같은 모습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로운 모습을 띤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사실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득한 기억 같은, 신의 목소리 같은 어떤 예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130p)

강은, 바주데바가 가르쳐 준 것 이상으로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그 강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웠다. 격정이나 욕망에 동요하지 않고, 판단이나 의견을 내려 하지 않고, 조용하고 열린 마음과 기대하는 자세로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136p)

그러자 현재와 영원은 동시同時라는 느낌이 그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로 그 순간 어느 때보다도 더 깊이, 모든 생명의 불멸성과 모든 순간의 영원성을 깨닫게 되었다. (146p)

그는 그들을 이해했으며, 생각이나 통찰이 아니라 오로지 충동이나 욕망에 이끌리는 그들의 삶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는 그들과 똑같이 느꼈다. 그는 완성의 경지에 접근하여 있었다. 최근에 입은 마음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어린애 같은 사람들을 자기의 형제처럼 여겼다. 그들의 허영심, 탐욕, 우스꽝스러운 특성들이 이젠 그에게 웃음거리가 아니었다. 그것들이 다 이해되었고, 그것들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163p)

싯다르타는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이제 오로지 귀를 기울이는 데만 몰두해서, 완전히 마음을 비운 채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그제야 그는 귀 기울여 듣는 법을 모두 다 배웠음을 느꼈다. 그는 자주 이 모든 소리, 강물에서 나는 수많은 소리를 들어 왔지만, 오늘은 그 소리들이 새롭게 들렸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그 수많은 소리들을 분간할 수 없었다. 기쁜 소리와 슬픈 소리를 분간할 수 없었고, 어린아이의 소리와 어른의 소리를 분간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소리들이 함께 섞여서 들어왔다. (중략) 그렇게 싯다르타가 수천 가지 소리를 내는 강의 노래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자, 고통의 소리와 웃음소리를 분리시키지 않고, 특정한 소리에 자기 영혼을 얽매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투영하지 않고 모든 소리에, 그 전체에, 단일성에 귀 기울이자, 수천 가지의 소리가 어우러진 그 위대한 노래는 단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바로 완성을 뜻하는 ‘옴‘이었다. (169-170p)

"... 시간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네. 고빈다, 나는 이것을 몇 번이나 거듭 체험했네. 그리고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현세와 영원 사이에, 번뇌와 지극한 행복 사이에, 선과 악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간격도 하나의 착각인 셈이지." (177p)

‘이 돌멩이는 돌멩이이기도 하고 짐승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하고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이 돌멩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이것이 언젠가는 다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항상 모든 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라고. (179-1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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