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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같은 말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평점 :
2017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임현 작가의 단편집이자, 작가의 등단(2014년) 이후 첫 소설집이다. 표제작 <그 개와 같은 말>이 작가의 등단작이고,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고두>도 실려있다. <고두>를 참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좋다.
책에는 총 열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흐름을 따라 단편을 쭉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작가가 타인의 불행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그 여자였을 수도 있어. 그 일에 휘말린 사람이 당신일 수도 있었다고. 그때도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어?(265p, 불가능한 세계)
언젠가 인터넷에서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쓴 유인물이라며 올라온 사진을 봤다. 그 유인물에는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 사진이 있었고, 이 사진을 보며 내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는 내용의 감상문을 쓰라는 설명이 딸려 있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요는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 감상을 적는 부분에 해당 수업을 들은 학생이 몇 마디 일침을 날렸다. 자기는 남의 불행을 두고 행복감을 느끼는 이기적이고 비공감적인 사람이 되기 싫다고. (역시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소비한다. 인터넷 상에서 무분별하게 넘쳐나는 이미지 뿐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한 번 정제된 불행도 마찬가지로 소비의 대상이다. 타인의 불행을 두고 자기의 행복을 가늠하다니, 이 얼마나 기형적이고 무서운 구조인가.
소설 속 인물들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바로 그런 사고를 목격하기도 한다. 자신이 사건의 중심에 있기도 하고, 아주 멀리서사건을 조망하기도 한다. 작가는 인간이 갖는 복합적인 성질을, 한없이 이타적이다가도 돌아서면 이기적으로 변하고, 자기의 슬픔을 치유하느라 옆 사람의 고통을 모른채 하고, 멀리 있는 자들의 불행에 동정심을 보내지면 가까운 이들에겐 그저 무관심한 복잡한 인간을 차분히 묘사한다. 읽고 나니 왠지 씁쓸하다. 인간은(나는) 본래 이런 존재일까.
나는 조금 낙천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인지라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삶이 아닌, 그것을 똑바로 마주하는 삶을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특히 좋았던 단편은 역시 <고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종종 목격된다는 설정의 <외>도 좋았다. 그리고 독후감을 쓰면서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으로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 생각났다.
그런 사람으로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단다. 부끄러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보다 선량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다만 아버지가 모르는 걸 내가 알았을 뿐. 그렇게 사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쪽이 더 이익이 된다는 걸 말이다.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단다. 선물을 준다는 것은 돌려받을 대가를 바라서이고 남을 위한 칭찬은 곧 나의 평판으로 이어져서 훗날을 도모하는 밑거름이 되지. 알아듣겠니? 지금 당장의 손해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나중의 이익을 담보하게 된단다. 손해 아니라 투자. 선물 아니라 거래. (33p, 고두)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그러므로 노력해야 한단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반성해야 하지. 의지를 가지고 아주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냥 생긴대로 살게 되거든.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게 나쁘다는 걸 몰라.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인지도 모르고, 어쩐지 좋은 쪽에만 서 있다고 착각하거든. 너도 들어보지 않았니? 재개발로 인해 보상받지 못한 세입자라든가, 장애인 시설을 들이지 않겠다고 시위하는 지역 주민 이야기 같은 거. 모른다고? 그런 일이라면 전혀 관심이 없다고? 그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겠구나. 남의 불행에 왜 관심을 갖지 않는 거겠니? 봐라, 네가 이렇게 이기적이다. (33p, 고두)
그런데 다들 그래. 다들 그러고 사는 거거든. 들키지 않을 만한 허물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 줄은 몰라. 그러니까 아무나 쉽게 비난하고 혐오하고 그게 정의인 줄 아는 거지. (49p, 고두)
진짜를 말하자면 누구든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모른다는 거야. 인간이란 본래 이기적인 존재고 그러므로 부단히 경계해야 하는데도 부도덕하고 불의한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아. (49p, 고두)
왜 함부로 내게 미안해하는 것이냐. 나는 그런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고 무얼 용서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나쁜 의도, 나를 몰락시키려는 의지만 있었을 뿐이다. 내 학생이었다. 그걸 내가 가르쳤거든. 나를 사랑한 배덕한 학생. (52p, 고두)
그러나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대부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일 뿐, 알고 나면 뚜렷한 인과관계로 엮여 있다. 우연이란 아직 모르거나 그중 한 부분이 누락된 것일 뿐이고. 소설가의 역할이 무엇이겠는가.그런 신비하고 모호한 부분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 ‘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의 빈 곳을 채우는 것 아닌가. (69p, 엿보는 손)
나는 그때 그 이야기의 절반 정도는 잃어버렸다. 잊은 게 아니고 처음부터 잘 듣지 않았으니까 그냥 잃어버렸다. 찢어진 채로 아니면 군데군데 지워진 채로 들었는데 남자는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102p, 좋은 사람)
"(...) 왜 함부로 나를 배려하려 드나."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전부터 오래 내리고 있었는데 쌓이지는 않았다. 나도 무언가를 쌓자고 듣던 것은 아니었으나 젖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103p, 좋은 사람)
아마도 우리가 무사했기 때문에 모두에게 별일 없던 거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만약 무리하게 대피소를 벗어나려 했다면 진짜 모를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고 우재가 후배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우리가 겪지 않은 사고일 뿐이었다. (120p, 좋은 사람)
열악한 것 중에서 덜 열악한 것을 고른다는 것은 능력보다는 운의 문제였다. 노력해서 얻어질 만한 것이 아니라 재수가 좋거나 나쁠 따름이었다. (139p, 무언가의 끝)
헤어질 때쯤 우리는 충무로에서 재개봉하는 「일 포스티노」를 보았고 연경은 그곳에서 소리 내어 우는 유일한 관객이었다. 그때 나는 연경이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느꼈다. 어딘가 애쓰고 있어서 그런 거라고 의심했는데, 아마 그것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153p, 그 개와 같은 말)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게 어떤 맥락에서 순차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고 오래 사이를 두었다가, 혹은 흐름상 분명 어색한데도 감정적으로는 자연스러운, 그런 대화들을 나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식으로 멀어지는 것과 멀어졌는지,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요, 묻고 대답하고 걸었다. (155-156p, 그 개와 같은 말)
말하자면 내가 느꼈던 불안함이란 이런 종류였다. 나의 어떤 말로든 세주를 웃게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울리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안. (158p, 그 개와 같은 말)
"글쎄 뭐랄까, 다들 비슷한 연애를 하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아주 특별하다, 특별해서 괜찮다, 믿으면서 무모해지는. 우리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런 연애였어요." (162p, 그 개와 같은 말)
"살면서 내 뒤통수를 볼 일은 없잖아. 자기 뒷모습이 어떻게 생긴지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 그 사람이 저만큼 멀어지는데 내가 저렇게 걷겠구나, 누가 나를 뒤에서 보면 저런 모습이겠네 싶은 거지. 기분이 진짜 이상하더라니까." (212p, 외)
"여보, 나는 당신 같지 않아. 당신처럼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고." (225p, 외)
"내가 그 여자였을 수도 있어. 그 일에 휘말린 사람이 당신일 수도 있었다고. 그때도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어?" (265p, 불가능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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