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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246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17년 11월
평점 :
선 너머가 두려운 모든 아이와 어른에게 보내는 위로
- 이수지, 『선』을 읽고
아무리 그래도 그림‘책’인데, 글은 없고 그림뿐이다. 최소한의 말 한 마디도 없이 내용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의심하며 펼쳤는데, 어떤 책에는 글이 사족이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덮었다. 좋은 책에 내가 덧붙이는 말이 뱀의 발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쓴다.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이 책에 담아 봅니다.”
빈 도화지 한 장, 연필 한 자루, 그리고 지우개 한 개로 시작한다. 다음 장, 빨간 모자를 쓴 아이가 선 하나를 그리며 새하얀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아이는 연필이고, 얼음판은 도화지다. 흰 도화지의 넓은 여백은 무대가 된다. 아이는 빈 얼음판에 얇은 선, 굵은 선, 똑바른 선과 굽은 선을 그리며 신나게 달리고, 회전하고, 마침내 점프를 시도한다.
종이 위쪽까지 뛰어 오른 아이가 얼음판에 착지하지 못하고 쿵, 바닥에 넘어져 주욱 미끄러지고 만다. 다음 순간, 미끄러지는 아이가 미쳐 얼음판 위에 안착하지도 못했는데 오른쪽 모퉁이부터 종이가 천천히 구겨진다. 그렇게 넘어진 아이는 종이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넘어지는 그림은 실패작이고, 실패작은 필요 없으니 구겨서 버리는 것이다. 재미있어 시작한 그림인데, 때때로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마음에 짐이 되는 친구들이 있을 터이다. 즐거워서 시작한 스케이트가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싫어지는 어린이도 있을 듯하다. 그림 그리기도, 스케이트도, 나아가 다른 모든 즐거웠던 일이 지나친 완벽함을 추구하다 질려버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도화지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스케이트를 타는 데 제법 능숙해 보이고, 아름다운 선을 만들며 즐겁게 웃고 있다. 그러나 점프에 성공하지 못해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스케이트를 타며 느끼는 즐거움도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펴서 주변을 둘러보면 미끄러져 넘어지는 친구들이 있고, 이 친구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광경이 있다. 그 뿐이랴, 우리에겐 함께 넘어지는 친구들, 내가 넘어졌을 때 손잡아 일으켜 주는 친구들, 그리고 능숙하지 않은 나를 위해 함께 손잡고 달려주는 어른들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넘어지고 실패한다.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세 걸음에 한 번은 주저앉거나 넘어졌던 것처럼, 지극히 쉬워 보이는 모든 일에 처음을 다시 생각해 보면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멋진 점프를 훌륭하게 해내지 못해서 종이를 구겨버린 적이 있다면 구긴 종이를 천천히 다시 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빨간 모자를 쓴 아이가, 우리가 외면해 버린 연필과 지우개가, 모든 즐거운 일의 처음이 거기 여전히 있다.
선 하나를 그으면 경계가 된다. 두려움을 갖는 일은 선을 긋는 일과 비슷하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선으로 안전한 경계를 정해 놓고 ‘선 안에서만’으로 행동을 제한하면 실패할 위험이 적어진다. 무서운 바깥 세계, 경계선 밖으로 구태여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동시에, 선을 그어 경계를 만들어 놓으면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도 가능해진다. 두려움을 마주하고 극복할 지점이 생기는 것이다. 익숙함과 편안함에 갇히지 않고,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 경계를 넘나들며 선 바깥의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엉덩방아를 찧는 게 너무 무서워 스케이트장으로 들어가기조차 겁나는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밖에 있어도 괜찮다. 스케이트장을 벗어나더라도, 우리가 미리 그어 놓은 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더라도 그 곳에는 여전히 흰 도화지가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흰 여백이 모두 아이들의 무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