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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젊은작가상은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등단 십 년 이내 작가들의 중단편소설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고 한다. 벌써 올 해로 8회째. 이 책을 사서 모으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나는 6회 쯤부터 사서 읽기 시작한 것 같다.
수상작은 총 7개로, 대상은 임현 작가의 <고두(叩頭)>.
이 외에도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 김금희의 <문상>, 백수린의 <고요한 사건>, 강화길의 <호수 - 다른 사람>, 최은영의 <그 여름>, 그리고 천희란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가 수록되어 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 최근 한국 소설의 트랜드를 함께 읽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올 해는 특히 젠더 감수성이 높은 소설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익숙한 이름의 작가도 있고, 처음 보는 작가도 있었다. 두 편 정도만 발췌해봤다.
임현, <고두(叩頭)>
고두는 '공경하는 뜻으로 머리를 땅에 조아림'이란 뜻이라는데, 단어가 낯설어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소설은 화자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화자는 대가를 바라고 행하는 '의도적 선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의와 친절을 가장한 '의도적 사과'는 그의 처세술인 셈. 소설 내내 이어지는 화자의 회상과 독백은 때로 기분 나쁘고 심지어 역겹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사상과 신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는 불편한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수린, <고요한 사건>
나는 감각적인 문장들을 좋아한다. 예쁘게 쓰인 문장을 읽으면 맘속에서 무언가가 정화되는 느낌. 외국 소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한글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감정들 말이다. 혹자는 이런 문장들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과함'을 과하지 않게 잘 표현하는 작가들이 있다.
단편의 마지막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눈 내리는 풍경에 붉은 깃발은 얼마 전 별세하신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를 떠오르게 한다.
“세상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창밖에는 커다란 눈송이가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눈송이가. 역청빛 어둠을 덧칠한 이웃집의 지붕 위에도, 옥상 위의 장독대와 비탈 아래 쪽의 앙상한 나무초리 위에도, 고요하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것은 정말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눈송이였다. 마른눈. 자국눈. 가랑눈. 국어사전에서 내가 발견했던 무수한 단오로도 형용하기가 충분치 않던 눈송이. 그토록 숨막히는 광경을 나는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까치발을 한 채로.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그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고, 그때 나는 창밖으로 떨어져내리는 아름다운 눈송이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집집마다 매달려 펄럭이는 붉은 깃발들 사이로 새하얀 눈송이가 떨어져내리는 풍경을, 그저 황홀하게. (155p)
그런 사람으로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단다. 부끄러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보다 선량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다만 아버지가 모르는 걸 내가 알았을 뿐. 그렇게 사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쪽이 더 이익이 된다는 걸 말이다.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단다. 선물을 준다는 것은 돌려받을 대가를 바라서이고 남을 위한 칭찬은 곧 나의 평판으로 이어져서 훗날을 도모하는 밑거름이 되지. 알아듣겠니? 지금 당장의 손해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나중의 이익을 담보하게 된단다. 손해 아니라 투자. 선물 아니라 거래. (10-11p)
소문들은 대개가 그런 식이었다. 누구의 목격담인지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었지. 정작 그 사람은 무슨 이유로 모텔을 드나들었던 거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으니까. 떠도는 의혹일 뿐이었고 아무런 악의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내밭는 말들이었다. (16-17p) 문제는 사과하는 쪽이 언제나 먼저 사과한다는 점이란다. 그게 자기 이야기인 줄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모르지. (17p)
고개를 숙이는 연주가 무서웠단다. 존나 무서웠어. 무릎을 꿇으니까 더 무서웠다. 그 완벽한 사과의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 거겠니. 그게 더 우월해지는 거라고 누가 가르쳤는데. 연주를 따로 불러서 미안하다, 아무것도 미안하지 않은데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그게 더 멋스러운 거라고 바로 내가 가르쳤는데 그걸 연주가 진짜 잘하고 있더구나. 누가 봐도 훌륭했으므로 나는 무서웠단다. (28p)
나를 무섭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내가 틀렸다고 확신한 것들이 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이 세계가 끝나고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 같은 것이다. (…) 나만 모르고 모두가 알고 있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닐까. 그걸 내가 다 따라가지 못한 게 아닌가. (38p)
그렇게 일찍 집에 돌아와봤자 혼자 있게 되는 날들에는 처음 이사 왔던 날 아버지가 내게 아파트 단지를 보여주었던 옥상에 쭈그려앉아, 사라져가는 태양의 빛줄기가 쇠락한 골목과 남루한 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검버섯 핀 노인의 얼굴을 쓰다듬듯이. 그러면 그 손길을 따라, 동네에 쪽잠을 청하는 고단한 노인처럼 주름이 깊게 팬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해가 지고 나면 대기에 남아 있던 온기도 노인의 마지막 숨결처럼 느리게 흩어져갔다. 몸에 한기가 깃들어 더 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어지면 그제야 나는 쭈그렸던 다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라한 골목이 어째서 해가 지기 직전의 그 잠시 동안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지는지, 그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동안 내 안에 깃드는 적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독이 달콤하고 또 괴로워 울고 싶었을 뿐. (145-146p)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이 교착(交錯)하는 순간을 짚으면서 백수린은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이 윤리적/도덕적인 것에 대한 판단을 압도하거나 삭제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인식에까지 나아갔다. (…) 때마침 도착한 「고요한 사건」의 회고와 더불어 우리는 아름다움에 매혹돼 잊어버린 추한 과거, 그 과거에 잠복돼 있는 끝나지 않은 싸움들, 묻히지 못한 사체들, 그리고 작별 인사 없이 헤어진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자문해보게 된다.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나는 과연 무엇과/누구와 친구가 될 수 있고 또 없는지를.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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