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온우주 단편선 1
곽재식 지음 / 온우주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곽재식 작가님은 타고난 이야기꾼인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단편 하나를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단숨에 끝내버리고 싶게 만든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은 휴가지에서 읽기 딱 좋다'는 생각을 했다.

 

연애소설이지만 한 커플이 꽁냥꽁냥하는 그런 내용은 아니고, 연애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것 같지는 않은 특별한 에피소드들을 너무 무겁지 않게, 또 지나치게 가볍지 않게 잘 담아내고 있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두 사람이 만나 연애를 하는 것은 너무나 지루하고 흔한 이야긴데, 하나하나 면면이 들여다보면 다 자기들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총 다섯 개의 단편

- 달과 육백만 달러

- 최악의 레이싱

- 달팽이와 다슬기

-

-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이 실려 있습니다.

 

한 편 한 편 재미있게 읽었지만 <최악의 레이싱><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최악의 레이싱

제목만 읽고 자동차 레이싱을 떠올렸는데(관심 1도 없음)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였다.(역시 관심 없음)

 

혹시 언제 처음 보조바퀴 없이 자전거를 타게 되었는지 기억하시는지? 내 처음은 잘 생각나지 않고, 동생이 두발 자전거 연습하던 때는 생생하게 떠오른다. 동생은 보조바퀴를 뗀 자전거 폐달을 힘차게 구르고, 아빠가 뒤에서 같이 뛰셨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동생은 이렇게 외친다.

"아빠, 절대 놓으면 안 돼!!"

 

아빠는 대답한다.

"잡고 있어!!"

 

나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봤는데, 아빠는 처음부터 자전거를 잡고 있지 않았다. 나도 저렇게 자전거 배우는 법을 터득했겠지. 8살쯤 되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생의 씁쓸한 뒷면을 보게 되었다. 삶이란... 이렇게 서로 속고 속이는 거구나...

이런 거다. 인생은 이렇게 서로 속고 속이는 거고, 원효대사의 해골물과 같이, '내 자전거를 붙잡고 있음'이란 믿음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는 것! 누군가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고 있다는 믿음으로 어린 아이들은 자전거 타는 법을 처음 배우게 된다.

 

주인공은 강의실에서 만난 한 여학생과 썸(!)을 탄다. 거의 사귀기 직전 단계에 돌입했을 때, 그녀가 데이트 신청을 한다. 영화보자고.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자전거 뒷자리에 자기를 태워달라고...

 

주인공은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어릴 적, 어른들에게 속아가며 자전거를 배운 적이 없는 것이다. 룸메이트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달라고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자력구제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이들은 박사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방법을 갈구한다. 그러니까.. 어떤 물리학적인 원리들을 가지고 자전거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기계장치를 고안해낸다.

 

스케일은 점점 커져 교수님까지 이 레이싱에 가담하게 된다. 무슨... 무슨 원리... 인공지능...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뭔지 잘 모르겠구!^^!(동공지진) 암튼 다 큰 성인은 이렇게 요란하게 자전거를 배운다.

 

어릴 적 배웠던 자전거 속에는 이렇게 생각보다 큰 원리와 인생의 쓴맛이 담겨있었다. 뒤에서 날 잡아주는 이를 믿고 폐달을 밟는다는 것이 어느 순간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뒤돌아보지 않고 선뜻 폐달을 밟기가 어렵다. 의심이 많아져서 그런지, 당한게 많아져서 그런지, 내 자전거를 잡아준다고 하는 이들에게 쉬이 믿음을 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의 일.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인 아름다운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그 날 아침 나는 새똥을 맞았다. 이탈리아 새똥 맞아보신 적 있으신지? 아니 거기서 새똥 맞을 줄 상상이나 했겠냐고...

 

모닝 새똥은 액땜이라 생각했다. 오늘 하루 중 이보다 불쾌한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시간이 다가왔고, 이제 그만 피렌체 기차역으로 향해야 하는데 도통 버스가 오지 않았다. 시간이 점점 촉박해지고 애가 타는데 택시도 안 잡히고. 어떡해? 어떡해?? 하다가 기차시간을 놓쳤다. 역에 가보지도 못한 채.

 

미국 출장 중이던 주인공은 백두산이 분화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화산재가 하늘을 온통 뒤덮어 당분간은 비행기가 뜰 수 없다는 소식이 덧붙여 있었다. 그럼 이를 핑계로 관광하며 쉬면 되겠지만, 주인공은 그 상황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이 그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예비 신부에게 전화가 온다. 우리 결혼식 할 수 있는 것 맞아? 신부가 운다. 신랑도 운다. 자연재해를 뭘 어찌할 수도 없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사실 이 결혼은 준비과정에서부터 삐걱거렸다. 얼마나 힘들게 겨우 맞이하는 결혼식인데, 한국에 갈 수 없다니. 절망에 빠져 눈물 콧물 쏙 뺀 신랑은 일단 공항으로 향한다.

 

이미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모두 취소되었고, 주인공은 중국까지 날아가, 거기서 육로로 한국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운다. 그렇지만 중국으로 가는 티켓도 모두 동이 나 있는 상태. 이대로라면 토요일까지 한국에 도착할 수 없다.

 

반짝, 하고 주인공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스친다. 지구는 둥글다! 태평양을 건너지 않고, 반대 편으로, 그러니까 유럽을 지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향하는 루트를 짜는 것. 이 경로라면 표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그렇게 결혼식을 하기 위한 긴 여정에 오른다.

 

찰나의 순간, 타이밍이 아쉬울 때가 있다. 한끝 차이로 무언가를 놓치기도 하고 얻기도 한다. 잠깐의 방심이 큰 화를 부르기도 하고. 인생은 왜 이렇게 맘대로 되는 게 없는지.

 

도저히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건과 마주쳤을 때, 과연 개인의 노력으로 그 상황을 얼마만큼 개선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심오한 소설은 전혀 아니었다만, 유쾌하게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잔잔히 여운이 밀려왔다.

 

정말 말 그대로 '재미있어서' 놓지 않고 끝까지 쭉 읽어버린 소설이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왠지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