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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평점 :
TvN에서 <알쓸신잡>이 방영되면서 차트를 역주행해 올라왔던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종류의 에세이나 자기계(개)발서는 좋아하지 않지만 유시민이라는 작가의 글이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딱 친구가 읽어보라며 빌려주기도 해서 책을 폈다. 두 달 전쯤 읽었는데 이제야 천천히 리뷰를 올리게 됐다. 읽은 지 좀 오래돼서 발췌 중심.
워낙 글을 잘 쓰는 분이라, 좋은 글 자체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충분했는데, 쭉 읽으며 전혀 기대치 않았던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책이 2013년에 나왔으니 집필하실 때는 50대 중반쯤 이셨을텐데, 50대의 중년 남성에게 이런 말을 듣고 이런 위로를 받다니. 예상치 못했던 터라 의외였고, 그래서 더 주의 깊게 읽게 되었다.
책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래서 작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심한다. 이 질문은 자연스레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이어지는데, 삶은 죽음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내달리며, 우리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 그리고 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위한 태도를 제시한다다. 책이 정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책을 통해 한 번쯤 같은 주제를 갖고 고민해 볼만하다.
바람이 불면 사물이 각자 다른 소리를 내는 것처럼, 사람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과 부딪쳐 제각기 색깔이 다른 삶을 산다.
영생은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의미를 말살한다. 영원히 산다면 오늘 만난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와 교감, 함께한 일들이 의미가 없어질 것만 같다. 그 모든 것이 다 굳이 오늘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일이 된다. 어디에도 굳이 열정을 쏟아야 할 필요가 없다.
‘가문의 영광‘에 대한 강의가 끝나면 어른들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모범 답안은 판사나 검사였다. 의사나 공무원도 대충 정답으로 통했다. 그와 다른 대답은 어른들을 실망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판사가 되겠다는 모범 답안을 말하곤 했다. 어른들은 매우 기꺼워하셨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인생은 소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냉혹한 과정인지 모른다. 원대한 꿈과 낭만적 열정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대통령, 과학자, 장군, 의사, 영화배우, 축구 선수, 교사, 판검사, 변호사, 외교관, 소설가, 기업가…. 아이들은 마음대로 꿈을 정한다. 스스로 정하든 부모가 권하든 백지에 그림 그리듯 할 수 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그려도 좋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다른 것을 그려도 된다. 아이들의 그림은 흔히 명예, 부, 권력, 지위를 성취하는 것과 연관되지만 청소부, 간호사, 수녀를 그리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그림은 가치와 관련된다. 지구를 깨끗이 한다든가, 아픈 사람을 도와준다는가, 슬픔에 빠진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자라고 사회를 배우면서 아이들은 알게 된다. 어떤 것은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직업을 잘 선택하려면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어디를 가든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원하는 사람이 적은 직업도 있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직업도 있다. 남들이 어떤 직업을 선호하는지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르면 된다.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좋아서 선택한 그 직업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좋아하는 것이라면 부득이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경쟁해서 그 직업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거기서 더 잘하기 위해서 또 경쟁해야 한다. 이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이기는 게 정답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일하게 되면, 이겨도 남는 게 없고 지면 최악이 된다.
짝짓기를 하기 전에는 같이 살 수가 없다. 짝짓기와 관련된 제도와 관습, 문화가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보통 살아보지도 않고서 평생 함께 살겠다고 공개 서약을 한다.
동물의 구애 행동은 짝을 얻어 자식을 낳고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생물학적 본능의 표출이지만 사람에게는 그것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구애는 삶에 지속적으로 기쁨과 의미를 제공하는 불가결한 요소이며 삶의 품격을 좌우하는 중대사이다. 성욕이 사라지지 않은 한, 아내와 남편은 일반적으로 서로에게 여자이고 남자이다. 부부는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으며 성장기의 공통적인 경험도 없다. 헤어지면 바로 남이 된다. 부부 사이의 책임의식과 유대감은 사랑 위에서만 튼튼하게 유지된다. 사랑이 없어지면 조만간 책임감도 약해진다. 만약 연인으로서의 매력을 완전히 잃어버릴 경우 상대방은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게 될 위험이 있다. 혼인이 깨지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불행은 아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이 진짜 불행이다.
결혼은 구애의 종착점이 아니다. 혼인한 이후에도 배우자에게 이성으로서 매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외모를 건강하고 보기 좋게 가꾸어야 한다. 다정한 말과 이벤트로 계속 점수를 따야 한다. 손잡기와 입맞춤, 팔베개와 같은 소소한 구애 행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구애는 단순한 짝짓기 수단을 넘어 소통과 공감의 기쁨을 만드는 행위이다. 구애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 말고는 사랑의 감정을 인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자기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타 행동을 한다. 이것은 다른 동물들의 이타 행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신념을 가지고 살면서 그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나도 정답은 모른다. 내 나름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신념은 훌륭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훌륭해야 한다. 나는 내가 가진 신념 덕분에 내 자신과 내 삶이 더 훌륭해지는지를 주의 깊게 살핀다. 내 자신을 비루하게 만드는 신념은 좋은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도 신념 그 자체가 확실히 훌륭해 보인다면, 그 신념을 실천하는 방법을 잘못 선택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 선이라고 믿는 것들이 언제나 진리인 것은 아니다.
나는 평지에 솟아오른 돌멩이가 아니다. 숱한 고비를 넘기며 이어져온 가족사의 굴곡 어딘가에 놓인 존재이다.
은하와 행성의 생애 주기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삶과 하루살이의 삶은 양적인 차이가 없다. 둘 다 찰나의 시간을 살 뿐이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하루살이는 그것을 모른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의 특별함이다. 그 특별함을 지성이라고 한다. 삶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그것을 모르는 삶은 그저 조금 더 길기만 할 뿐 하루살이의 삶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영원한 수령‘을 찬양하는 박연폭포 바위 글발은 하루살이의 몸부림보다 못한, 무지와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이 남긴 보기 흉한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
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가까이 온 만큼 남은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만큼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 애통함을 되도록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 이런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면서 잘 준비해야 그런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나는, 그렇게 웃으며 지구 행성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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