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의 정치학 - 아주 평범한 몸의 일을 금기로 만든 인류의 역사
박이은실 지음 / 동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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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바빴던 지난 달 한달 내내 찔끔찔끔 읽다가 드디어 마지막 장을 덮게 된 책 <월경의 정치학>. 이 책은 박이은실 선생님이 '월경'을 주제로 쓰신 한 편의 기술지 정도로 이해하면 되려나? 필드는 말레이시아이고, 이 전에 영어로 된 책을 쓰셨는데 기회가 닿아 모국어로도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선생님의 연구 보고서이기도 한지라 책장이 저절로 넘어간다거나 글이 술술 잘 읽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읽는데 더 오래걸림...) 그렇다고 엄청 학술적이고 어려운 책도 아니기에 대중적으로 권할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월경에 대해 이렇게 공론화할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점이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내 여친은 질에 힘줘서 생리 참던데?', '생리는 밖에서 참다가 집에 와서 하는거 아니야?'와 같은 무식이 통통 튀는 말들이 2017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여알못' '생알못'은 자랑이 아닌 것을... 이런 기초적인 상식조차 부족한 지경인 사람들이 월경 속에 숨겨진 문화적 맥락을 과연 읽을 수 있는가 싶지만, 어쨋든 이 책은 월경이라는 주제를 꺼내어 도마 위에 올려 낱낱이 분해해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한 일간지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1991년 조사에서 보면 이미 십대부터 오십 대까지 월경 인구의 87.4퍼센트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중 십 대의 일회용 생리대 사용률은 백퍼센트였다. 월경 인구는 일생의 팔분의 일을 생리대와 함께 보내고 일생동안 약 일만이천여 개의 생리대를 소비하며 한국의 월경 인구는 이를 위해 평생 약 638만 4000원 정도를 지출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여학생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깔창을 사용했다는 일화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 벌써 일 년 전이다. 대부분의 월경 인구는 인생의 8분의 1을 생리대와 보낸다고 한다. 인구의 절반이 생리를 경험한다고 할 때, 지금처럼 월경을 쉬쉬하는 분위기는 가히 기형적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월경이 가지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와 그 의미가 만들어진 맥락을 지적한다. 비록 주요 연구 필드가 말레이시아이긴 하지만 배경을 우리나라로 바꾸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필자가 지적하는 부분은 월경이 양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 지배층(주로 남성)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취사선택되어 소비된다는 점이다. 때때로 생리는 불결하고 더러운 것이라 종교의식에의 참여마저 제한되지만, 동시에 매우 신성하고 고귀한 것으로 귀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성 인권이 높은 나라에서는 생리에 대한 양가적 의미가 없다고 하는데, 남성이 이를 취사선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생리컵이라는 새로운 생리대가 시장에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관련 기사 댓글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리고 이 한심한 댓글들의 원인은 여성의 신체와 월경에 대한 무지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몸을 지나치게 신성화/객체화하고 그에 대한 환상을 점철하여 '숨겨야 하는 것' 처럼 묘사하는 우리네 문화와 교육이 결국 이렇게 무~식~한 인재들을 양성해내는 것 아닐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알못은 1도 자랑이 아닌 것)

 

밑줄 몇 군데. 이번 밑줄은 좋은 문장이라기 보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사실들 위주.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몸이란 무엇보다도 ‘젠더‘ 규범이 구성되고 체화되고 또 발현되는 정치적 현장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몸은 가부장적 사회체계 안에 현존하는 위계적 젠더 구조와 규범, 그리고 젠더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에 주요하게 동원되어 왔다. 여성의 몸은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인식의 근거가 되어 왔고,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관념을 정당화하는 데 쉽게 동원되어 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존중과 해방이 갖는 공통분모이며 ‘좋은‘ 사회가 추구해 가야할 길이 아니겠는가.

최초의 난자 배출은 조용히 일어난다. 그것은 최초의 정자 배출이 남자다움이라는 세계에 첫발을 딛는 자랑스러운 경험으로서 사회화되는 사건과는 대조적이다. 첫 월경과 첫 사정은 당사자들에게 주목할 만한 경험이다. 난자와 난자를 둘러싸고 있던 피가 몸 밖으로 배출되는 최초의 경험인 초경은 그것을 겪는 이가 알아야 할 갖가지 제약들에 대한 가르침과 함께 시작된다. 월경은 대체로 뿌듯하거나 흐뭇한 혹은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경험되도록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어권 서구 문화에서 월경은 심지어 ‘저주‘라고 불리어 왔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문화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완경을 할 때까지 이 여성은 월경 중에는 절대 기도를 하지 않았고 절이나 묘지 등 소위 성스러운 장소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이 여성이 원망한 것은 월경을 보는 시선이 아니라 월경을 하고 있던 자신이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공적인 비난을 듣기 전에 스스로가 월경혈을 다른 이에게 보이는 것을 창피하고 불쾌한 일로 느끼게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월경혈을 내보이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카우르의 사진이 문화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인스타그램의 대응 또한 다분히 정치성을 띄는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일회용 생리대의 등장과 판매 경쟁과 함께 등장한 다양한 광고는 신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전파를 통해 내보내졌다. 1979년 한 일간지에는 이를 불평하는 투고가 실리는데 반드시 이런 분위기 때문은 아니지만 1980년 9월 방송윤리위원회의 규제 조치로 생리대 전파광고는 금지되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인 1995년이 되어서야 금지조치가 해제된다.

일회용 생리대 광고는 발달된 기술과 제조과정에 힘입어 만들어진 제품의 기능을 내세우면서도 한편에서는 당대의 남성들이 요구하는 여성상을 철저하게 따르고 반영하는 전략으로 변천해 왔다. 1997년 금융 위기의 한국사회에 정리해고 바람이 세찼을 때 해고 첫 순위에 오른 이들은 다름 아닌 여성들, 그것도 배우자와 함께 같은 기업에 고용된 여성들이었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생리대 광고에서 1970년대 초에 강조되었던 자유, 해방, 활동성 등의 이미지나 1990년대 초에 P&G 등에서 전면에 내세웠던 전문여성의 이미지는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순수‘, ‘청순‘, ‘깨끗한‘, ‘하얀‘ 등의 이미지가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은 눈여겨볼만하다.

그런데 일회용 생리대의 상당수가 생리통과 자궁건조증, 피부병 등을 유발하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거론되지 않는다. 월경혈 냄새를 고약하게 만드는 원인도 월경혈 자체에 있기 보다는 생리대에 들어 있는 화학성분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도 공론화되지 않는다. 탐폰의 경우처럼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위험한 독성 물질이 착용 시 질 내부에서 만들어져 상당수의 여성들이 피해를 입어왔다는 사실도 특별한 기회가 되지 않으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다른 일회용품들과 마찬가지로 사용한 일회용 생리대가 처치 곤란한 쓰레기로 차곡차곡 지구상에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대부분의 여성들조차 일상생활에서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대안생리대가 활동을 많이 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점이 없지 않기 때문에 활동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대안생리대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일회용 생리대가 월경과 월경하는 몸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인식하게 만드는지, 월경하는 몸들이 살아가는 지구라는 환경과는 어떤 관계를 만들며 살아가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과 의식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월경과 월경하는 몸에 대한 시각이야말로 오랫동안 월경하는 사람들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통제해 온 장본인인 것이다.

가부장적 질서가 미미한 사회에서는 양가성을 전략으로 취해야 할 필요 자체가 없다. 월경은 그냥 월경으로서 존재할 뿐 그것에 어떤 구구절절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월경이 순수한 것이라거나 불순한 것이라는 식의 어떤 특정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예를 들면, 여사제는 월경 여부와 무관하게 언제든지 어떤 의식이든 거행할 수 있고 또한 초자연적 존재와도 언제든지 접신할 수 있다. 월경을 한다고 무엇을 더 할 수 있다거나 무엇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 월경을 하던 하지 않던 해야 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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