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리커버 특별판)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자오선을 지나갈 때」와 「기도」를 읽고 씁니다.




1. 상경하는 청년들

 서울에는 수많은 점이 있다. 열차는 점을 따라 서울을 가로지르며, 사람들은 점을 따라 이쪽 저쪽으로 움직인다. 서울이 낯선 수많은 청년들도 점을 따라 움직인다. 지하철과 버스 노선도는 이들이 의존하는 가느다랗고 위태로운 선이다. 


 생애과정의 규범성은 청년들에게 취업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결혼을 통해 정서적으로 자립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고용악화의 영향으로 청년 세대는 비정규·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국가고시에 뛰어들고 취업-실업 상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 선호 현상과 지방과의 임금격차, 그리고 수도권에 집중된 고용기회는 청년들을 서울로 끌어들이는 요인이다.(정민우·이나영. 2011. 『청년 세대, ‘집’의 의미를 묻다』. 한국사회학. 131쪽)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청년이 1인 가구의 형태로 서울에 거주하며 열악한 주거환경과 삶의 조건이 화두가 되었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와 「기도」에는 이처럼 고향을 떠나 상경했으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주인공이 지하철을 타고 등장한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화자이자 취업준비생인 아영은 서류 심사에서 매번 낙방하여 좌절한다. 그는 집을 떠나 처음 한강을 건넜던 때를 떠올린다. 1999년 봄 재수생 시절, 노량진이었다. 서울에 있는 재수학원에서 공부해야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 느꼈고, 자식의 서울살이가 부모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채 상경했다. 처음 지하철 창문 너머로 바라본 한강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63빌딩은 신기했으며, 노량진은 ‘약속의 땅’처럼 느껴졌다. 갯바람 냄새가 나는 노량진에서 아영에게 할당된 공간은 책상 한 칸이었다.


학원 근처 여성 전용 독서실을 계약하고 조그마한 사물함 키 하나를 받았다. K-59. 책상 한 칸이 내 몫의 공간이었다. 

 

 「기도」에 등장하는 자매는 비수도권 지역에 사는 청년들이 어떻게 서울로 내몰리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화자인 인영은 대학에 진학하며 서울에 입성했고, 졸업 후 몇 년간 공사 준비를 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질 때쯤 쫓기듯 화장품 회사에 취업했지만 마지못해 들어간 직장에서 1년 만에 퇴사하고 다시 구직전선에 뛰어들어 동생과 함께 서울에 있는 작은 원룸에서 산다.


 지방에서 수학과를 나온 인영의 언니는 졸업 후 몇 년간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시험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았다. 동네 사람들의 애정을 가장한 지나친 오지랖과 읍내 독서실에서 만나는 친구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말을 걸어오는 낯선 남성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질 때쯤 서울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 여기저기 전전하다 작년에 노량진 근처 상도동에 입성했다. 시험에 몇 차례 떨어지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신림동 고시촌에 방 하나를 구한다. 


 인영은 고시촌에 사는 언니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신림으로 향한다. 고시원에 들어서자 똑같은 문 수십 개가 펼쳐졌다. 언니에게 농담 삼아 ‘갈 데까지 간 거냐’고 물었지만, 자매는 그 말에 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갈 데까지 간’ 고시원을 나서면 산자락에 살짝 가려진 63빌딩이 보이는, 아이러니한 풍경이 펼쳐진다.



2.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집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생산과 창조로 이어지는 ‘깊은 심심함’을 논한다. 잠을 통해 신체적으로 이완한다면, 깊은 심심함을 통해 정신적으로 이완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분주하기만 해서는 어떤 새로운 것도 창조할 수 없으며, 모든 생산성의 근원은 심심함에 있다. 사색하는 삶은 심심함에서 비롯되며, 인간은 이러한 심심함, 즉 사색을 통해 자기를 둘러싼 알을 깨고 바깥 세계에 침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이론은 오늘날 청년들에게 어떻게 가닿을 것인가? 이 지점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90여 년 전에 던진 질문을 생각해 볼만하다. 그는 저서 『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다 가정해보자고 말한다. 누이도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고 말이다. 과연 이 누이가 그의 남매처럼 후대에 전해질 명작을 집필할 수 있었을까? 울프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한다. 돈과 방이 없는 여성은 결코 글을 쓸 수 없었다고 결론내린다. 


 작가는 당시 여성들의 경제적 종속과 생활 공간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한다. 어떤 여성에게도 풍부한 재산이나 '자기만의 방'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은 언제나 가난하거나 항상 거실에서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는 존재였다. 애초에 여성에게 글을 쓸 만한 물적 조건이 제공되지 않았으니 ‘여성 작가’나 훌륭한 ‘여성 작가의 작품’은 탄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채 서울에서 부유하는 청년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청년들은 깊은 심심함을 느낄 만한 시공간적 여유가 없다. ‘자기만의 방’ 한 칸조차 없어 다른 사람들과 독서실을 4칸으로 쪼개어 쓰고, 잔혹 동화처럼 다닥다닥 붙은 개조된 고시촌에 산다. 행여 옆방에 소음이 될까 숨죽여 사는 이들은 육체적 이완을 위해 편안하게 잠을 잘 여유도, 정신적 이완을 위해 깊은 심심함을 느낄 여유도 없다. 


 청년에게 상경하여 지내는 공간은 ‘집’이라기 보다 ‘임시 거주지’에 더 가깝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서 아영은 재수생 시절 노량진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곳이라고, 노량진은 모든 것이 지나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독서실의 책상 한 칸, 너무 비좁아 책상 위에 의자를 올리고 자야했던 4인실의 4분의 1칸을 떠올리며 그 시절에는 “어떤 공간이나 시간이 아닌 번호 속에 살았다”고 느낀다. 4분의 1칸 짜리 방에서 아영이 룸메이트들 옆에서 숙면하거나, 치열하게 시험을 준비하던 와중에 사색할만한 심심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노량진에는 머무는 사람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혹 오래 머물더라도 사람들은 그곳을 ‘잠시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기도」에서 인영의 언니가 사는 신림동은 침묵에 휩싸인 신경질적인 도시이다. 개조한 것이 분명한 4층짜리 고시원에 들어서면 1층 복도 게시판에 “통행 시 반드시 뒤꿈치를 들고 다닙시다.”라는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작은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날카로운 이웃 사이에서 숙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인영은 신림동을 머무는 사람들이 아닌, 잠시 지나가는 중인 고시 인구 2만 명의 침묵을 상상한다.


언니의 방은 3층 복도 끝에 있다. 수십 개의 똑같은 문이 잔혹 동화처럼 펼쳐져 있다. 그러려니 했는데도 막상 그 앞에 서니 숨이 막힌다. 


신림동 고시 인구가 2만 명 정도 된다던데. 여기를 지나간 이들 모두가 일제히 숨죽이며 살았겠구나. 2만 명의 침묵. 2만 명의 뒤꿈치. 2만 명의 불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들이 휴식을 취할 진짜 집은 어디에 있을까? 아영은 수능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며칠 동안 잠만 잤다는 짧은 서술은 그가 그동안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차갑고 두려운 서울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 맘편히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영의 언니는 한 달에 두어 번은 꼭 동생들이 살고 있는 작은 원룸에 들린다. 딱히 약속을 잡는 것도 아니고 아무 때나 문득문득 동생들을 찾아간다. 인영은 언니가 이 집을 찾는 “이유는 딱 하나 ‘깊은 잠’을 자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모두 자기가 잠시 지나가는 중인 낯선 방에서는 쉬지 못한다. 



3. 괴물을 만드는 사회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도입부에서 아영의 친구가 서류 탈락 소식에 좌절하는 아영에게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졌”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주거 문제와 취업 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삶의 고충에 직면한 청년들이 어떻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지를 암시한다.


 아영은 재수생 시절 유명 강사의 수업 수강증을 구매하기 위해 전날부터 학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던 일을 떠올린다. 학원 문이 열리고 판매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밀치기 시작했고, 아영은 자꾸만 주변부로 밀려났다. 학생들은 “밀지 말라”고 소리쳤고, 아영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허공 사이로 불쑥 들어온 손 하나를 잡았고, “그 손은 온 힘을 다해” 아영을 잡아 당겼다. 온 힘을 다해야만 겨우 살아남는 세상이었다. 주변부로 밀려나는 사람의 손을 잡는 일은 어려웠고, 괴물이 되지 않기는 더 어려웠다.


 「기도」에서 인영은 문화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노동부 조사원과 설문조사를 약속했다. 몇 번의 약속 끝에 만난 조사원은 50대 남성이었고, 인영은 그를 보며 왠지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살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영은 설문조사 과정에서 시급 높은 과외 아르바이트에 놀라는 조사원을 바라보며 묘한 우월감과 측은지심을 느낀다. 그러한 연민으로 사내에게 다음 목적지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었으나 이내 자기의 안내가 정확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사내를 위해 그것을 다시 정정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혹 나의 선의가 사내를 더 헤매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이다. 나는 휴대 전화를 든다. 그러고는 사내에게 문자를 보낼까 말까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보내지 않는다. 


 성과를 향한 압박은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한병철에 따르면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라는 능력의 긍정성은 효율적으로 패러다임을 지배하며,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노동하고 강제하도록 만든다. 21세기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내며, 이렇게 탄생한 우울하고 병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앞서 살펴 본 두 단편 속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자발적으로 상경하는 것처럼 보인다. 좋은 학원이나 공부할만한 공간, 혹은 더 나은 학교와 직장을 찾아서 자발적으로 미래를 기획하는 냥 묘사된다. 그러나 제 발로 서울로 들어온 청년들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 측은지심에서 나오는 안일한 배려정도를 베푸는 괴물이 되어간다. 


 괴물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청년들은 왜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이토록 애쓰고 있는 걸까? 잠잘 곳도, 생각할 곳도 되지 못하는 고시원 방 하나로 청년들을 밀어넣는 것은 무엇일까? 쫓기듯 상경한 청년들이 진정한 자기만의 방을 갖기까지 아직 내딛어야 할 발걸음이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참고문헌

김애란. 2007. 「자오선을 지나갈 때」, 「기도」. 『침이 고인다』. 문학과지성사.

버지니아 울프. 2006. 『자기만의 방』. 이미애 역. 민음사

정민우·이나영. 2011. 『청년 세대, ‘집’의 의미를 묻다』. 한국사회학.

한병철. 2012. 『피로사회』. 김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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