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 이름만큼이나 눈알이 팽팽돌고 혀가 돌돌 말리는 사람이다. 도대체 그사람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 혹시 개미라도 들어있지 않을까 -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열 네살 때부터 만들어온 것이 바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다.

<개미>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졌을 법한 이 책을 지난해 생일 어느 작자로 부터 선물을 받았으나, 이 책은 나의 책상 속에 고이 간직돼 있다가 최근에야 나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결국 나는 책을 선물 받은지 만 1년에 완독을 한 셈이 되어버렸다.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고 부질없게 생각하면 부질없고 괜찮다고 생각하면 만물상자 보물상자처럼 느껴지는 이 책은 제목처럼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백과사전 이다. ㄱ,ㄴ 순으로 정리돼있으니 사전의 구색을 갖추었고,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도 아니니 나름대로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베르나르 자신의 기준에 따라 항목이 선정되었으니 상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사전이 틀림없고, 사전을 처음부터 찬찬히 읽는 것은 때론 바보같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찬찬히 읽었다. 주루룩 넘기다가 마음에 드는 항목만 읽는다고 누가 뭐랠 것도 아닌데 왠지 그렇게 허술(또는 자유분방)하게 읽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다.

- 냄새 언어 : ... 그 과정이 미묘하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후각적인 대화 를 나누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고는 그저 <사랑은 맹목적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 개들이 그렇듯이, 어떤 사람이 상대에게서 <공포>의 메시지가 담긴 냄새를 맡게 되면 그는 자연히 상대방을 공격하고 싶어질 것이다...

- 왜와 어떻게 : 장애물이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이 보이는 최초의 반응은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거지?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잘못을 범한 사람을 찾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에게 부과해야 할 벌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개미는 먼저 <어떻게,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 함께 있기 :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로를 바라보아도 되고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야 있다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더 이상 마음을 쓰거나 떠벌릴 필요도 없다. 그저 말 없이 함께 있음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위에 열거한 항목들은 다소 감성적인 것에 편중돼있지만 실제 이 신기한 백과사전에는 과학과 철학, 이성과 감성, 그리고 베르나르의 가치판단이 고루 갖춰져있다. 그런 다양함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백과사전이 좋은 이유가 뭐겠어.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거나 동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잖아! 그냥 마음에 드는 부분만 살짝 빼내 읽는다해서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명심한다면 책장을 넘기는 속도에 융통성이 생겨난다.

책을 덮으며, 쓸데없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나도 백과사전이나 하나 만들어볼까? 단지 사전, 뭐 이렇게. 혹시 모르니까 기대하시라. 한 20년 쯤 뒤에 서점 한 귀퉁이에서 '사전'이란 이름을 단 허름한 책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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