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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두렵지 않아요 - 아름다운 소년, 이크발 이야기
프란체스코 다다모 지음, 노희성 그림,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에 지쳐, 싸움에 지쳐 투덜거리는 나에게 선배 언니가 불쑥 건낸 책. 한번 읽어보라고, 마음먹고 읽으면 한시간만에 읽을 수 있을 거라고,책을 읽으면서 자기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을 찍, 흘렸다고. 머리맡에 책을 둔지 한 일주일 쯤, 모처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어제 새벽 4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만 들어서는 무슨 '자신감 획득 프로그램용' 책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노란 표지에 왠 소년의 얼굴이 그려져있는 이 책에는 '아름다운 소년, 이크발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이 책은 실제 존재했던 이크발 마사흐라는 소년 노동운동가의 이야기를 파티마라는 소녀의 시점으로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심각한 아동학대가 이뤄지고 있는 파키스탄, 발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 손끝에 피가 나도록 카펫을 짜는 아이들,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불합리하게 '억압'받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그애들에게 미래는 없다. '빚을 다 갚는 날'이 그들의 미래이지 이상향인 것이다.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것도 분노가 치미는 일이지만 자신들이 그릇된 힘에 의해 당연히 누려야할 기본적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아이들을 모면서, 몸이 떨렸다. 화가 났다. 정말 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옆에서 함께 일하던 아이가 거리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자기와 함께 일하는 아이들을 감시하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모습은 정말, 경악 그 자체였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과연, 살고 있는 것이기나 할까. 이런 아이들 앞에 이크발이 나타났다. 그리고 말한다. 빚이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고. 그래, 돼지같이 살찐 착취자가 있는 한 언약한 팔, 다리를 가진 그네들의 빚은 탕감되지 않을 것이다. 죽도록 일해도, 기계처럼 일해도 그들의 빚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할 수 밖에 없는 그, 어리고, 연약한, 아이들.
이크발을 똑똑한 아이였다. 그것은 그애가 남들보다 더 빠르고 훌륭하게 카펫을 짤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애는 자신들이 받고 있는 대우가 불합리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거기서 벗어나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 그렇게 했다.
열세살의 나이. 세상이 무섭지 않았을까. 또래의 아이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크발은 많이 무서웠을 게다. 그리고 뭔가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더 많이 무서웠을 게다. 하지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서서히 무서움을 떨쳐버렸을 게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학대받는 아동 노동자들을 위해 싸웠을 게다. 썩어빠진 카펫 마피아들의 총에 쓰러지기 전까지.
책을 다 읽었을 때는 5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이크발을 만난 시간은 고작 한시간이었는데 꼭 어딘가 멀리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조금씩 동이 터오고, 불을 큰 자취방에는 까만 어둠이 내리지 않아서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자꾸만 가슴이 뛰어서, 몸을 뒤척였다. 남들이 모르는 불합리합을 인식하는 것, 그것을 그냥 넘길 수 없는 것, 그래서 뭔가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 참....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