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비평의 눈으로 읽다
이혁규 지음 / 우리교육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정규교육과 관련해서 두 가지 씁쓸함이 있다. 하나는 초, 중, 고 12년 동안, 스승의 날에 찾아뵙거나 여타 즐겁고 슬픈 일을 여쭐 은사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과 (생각보다 나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비극이다) 동창들의 안부를 묻다보면 상당수가 교사가 되었거나, 임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학교를 다닐 때 내가 제일 싫었던 선생님은 '내가 선생이 될 줄 몰랐는데 진짜 인생은 모를 일이야'라고 자조 어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그런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성향이나 능력을 차치하고 신뢰를 할 수 없었다. 교사가 평생 꿈이었거나, 천직이 아닐지언정 학생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 일에 대해 책임감과 애정이 없다는 말 아니던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이 선 자리를 빛나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수업, 비평의 눈으로 읽다>에서는 각기 다른 이유와 방식으로 '욕심'을 내고 있는 교사들의 수업을 엿볼 수 있다. 동네 한 바퀴 돌기, 대운하 찬반 토론, 천정산 도룡뇽 재판,,, 정규 교과 과정에서 어지간한 준비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녹록한 일은 아니다. 헌데, 그걸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게 어떤 장, 단점이 있는지 개선점은 무엇인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교사의 수업이라는 것은 제도에 의해서 규제, 발전할 수 있다기보다 교사 개개인이 애정과 사명감을 가질 때 달라질 수 있다. 게으르게 하려면 할 수 있고, 알차고 신나게 하려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 재량권을 가졌다는 것은 행운이며 동시에 책임이다. 교사라는 직업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타직종에 비해 지위와 경제적 여건이 안정적이라서(특히 여자들에게는 최고라고 일컫어지는) 가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지식 전달에 관한 창조성을 현장에서 직격탄으로 날리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예민하다. 선생이 애정이 있는지 없는지, 자기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쉽게 알아차린다. 또한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에 대한 판단도 빠른 편이다. 물론 활동적 수업을 힘들어하거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시 위주의 수업을 바라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 그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것만 바라다보면 나처럼 '은사' 한 분 안계시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열정을 쏟는 선생님을 만난 걸 행운으로 알라고. 나는 너희들이 몹시나 부럽다고.

수업은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는 장이면서, 아이들의 성장을 유도하는 장이다. 교사 개인에게 수업을 날로 먹지 말고 열심히 해보라고 강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고, 좋은 것은 배우고 나쁜 것은 고쳐나가는 작업을 통해 아이들은 물론 교사도 성장할 수 있다. 수업비평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수업 비평에서는 수업을 하나의 공연(퍼포먼스)라고 보고, 교사는 공연을 하는 사람, 아이들은 관객(경우에 따라 아이들도 공연자가 된다)으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연기를 싫어하는 배우에게 무대는 공포일 뿐이다. 하지만 연기를 즐기고 명배우가 꿈인 배우에게 무대는 설렘이다. 자기 공연에 욕심내고, 다른 사람들의 공연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공연을 비평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사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어린시절 나를 가르쳤고 아직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과 교사로 성장하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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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0-29 13:06   좋아요 0 | URL
30년 전이랑 똑같이 아직도 학교에선 수업 연구를 하는데요... 쇼죠. 보여주기 위한 쌩쑈.
나의 수업을 남과 나누는 문화, 교장, 교감 조차도 수업을 보지 않는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이런 시도들이 일반화되려면... 학교가 많이많이 바뀌어야 할 겁니다.

gzem 2008-11-10 09:40   좋아요 0 | URL
보여주기 위한 '쇼'라는 것은 저 또한 학창시절을 지나며 많이 겪었지요. 그날만 유독 다른 선생님의 모습, 질문자의 순서까지 정하는 치밀함(?), 떠들거나 장난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반협박, 제발 협조해달라는 애원이 얼버무려진 모습들이 아직 생생합니다.
하지만 '쇼'라는 건 기회일 수 있지 않을까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 속이는 것이 될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건강한 몸과 아름다운 라인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학교가 변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물론 바뀌어야 하고요. 하지만 목표를 너무 크게 잡으면 나태함이나 체념을 합리화하기 쉬워지지 않을까요.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신의 공연을 묵묵히 준비하고 실행하는 선생님들이 적지 않다는 것에서 희망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