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웬만한 사업 독자적으로 결정
◆지금은 임원시대 (2)◆
지난해 초 삼성전자는 중소기업청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삼성전자에 상을 주기 위해 중소기업청장이 삼성전자를 방문한다는 것. 삼성전자 관계자는 "예 전에는 정부에서 큰 상을 줄 때 임원들에게 예행연습하러 1시간 전에 오라고 했다”며 "기업이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임원의 위상이 올라간 상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의 위상을 90년대 초와 비교해보면 '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재계 관계자는 "그때만 하더라도 대기업 임원은 단순 한 직장 상관에 불과했다”며 "기업의 중요한 사항을 오너나 측근이 결정하면 임원들은 집행하는 역할만 맡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가 적용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의 권한과 역할이 훨씬 커졌다.
임원은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참여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주요 사업부의 성과 를 관리하며 직원 의견과 관심사를 대변하는 업무를 한다.
최고 의사 결정권자 인 CEO에 대한 조언자 형태로 경영에 참여한다.
중요한 전략부터 직원 연봉을 정하는 문제까지 기업의 거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웬만한 건은 담당 임원의 결재만 받으면 곧바로 실행되며 기업의 미래전략 밑 그림까지 그리게 된다.
LG전자의 한 임원은 "임원이 되고나서부터 내 자신이 회사 사업의 방향을 결정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는 점에서 솔직히 부장 때와는 다른 희열을 맛본다” 고 말했다.
그는 "부장 때는 회사가 정하는 대로, 임원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지만 임원 은 항상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선택을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집단소 송제가 도입되면서 내 결정이 회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크 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상무보인 A씨는 "임원이 되면 권한이 엄청나게 커지지만 결단의 연속 이라는 점에서 피곤한 자리”라며 "임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뇌하는 '햄릿' ”이라고 말했다.
SK의 한 임원은 "임원은 단순한 집행자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며 "항상 열린 마음으로 부하들의 의견을 잘 듣고 아이디어를 많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임원은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도전해볼 만한 매력적인 자리다.
하지만 아무나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에 비유될 만큼 좁은 문이다.
삼성의 경우 전체 직원 14만명 중 임원은 1400명으로 직원 100명당 임원이 1명 꼴이고, 대한항공은 전체 직원 1만7800명 중 임원은 97명에 불과해 직원 대 임 원 비율이 0.54%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한 고참 부장은 "함께 입사한 동기가 100명이라면, 이 중 임원으로 승진하는 동기는 기껏해야 10명 안팎일 것”이라며 "임원은 회사에서 선택받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들이 임원을 고르는 기준도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임원의 결정 하나는 회사 운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며 "임 원은 미래의 CEO 후보이고 검증받은 인재이기 때문에 인재 관리라는 측면에서 별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별로 임원 선정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단 리더십은 임원이 갖춰야 할 공통사항이다.
삼성은 임원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지(知) 행(行) 용(用) 훈(訓) 평(評)' 등 다섯 가지를 꼽고 있다. 사업의 핵심역량을 잘 알아야 하고,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는 것을 솔선수 범해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또 아랫사람에게 일을 제대로 시킬 줄 알아야 하고 가르칠 줄 알아야 하며 해놓은 일을 정확하게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자기희생 정신과 동료애, 포용력을 가지고 협조해 나가는 인 간미와 청렴한 도덕성을 갖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LG 역시 능력과 함께 도덕성을 중시하고 있다. LG는 실행력이 뛰어나고 단기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인재를 임원으로 선발한다.
<백순기 기자>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