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을 제목 삼아 지어진 평론집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는 김수영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겨레가 기획하고, 24명의 유수한 연구자와 시인들과 함께 2021년 연재한 평론을 묶어 낸 책이다.
교과서에서 만나게 되는 그의 유작인 <풀>로 가장 잘 알려진 시인이지만,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일성만세”>, <하······ 그림자가 없다>와 같은, 여전히 펄떡이며 질문하는 그의 시들을 좋아해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게된 이래 만나길 고대했었다. 김수영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가진 매력에 더해 그의 글들을 다시 읽고 현재의 맥락에서 새로 해석하는 24명의 연구자/시인들의 이름은 또 어떻고. 적확하고 다정한 평론을 선보이며 평론이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음을 내게 처음 알려준 신형철 평론가부터 나희덕 시인까지. 이 책을 어떻게 지나쳐 갈 수 있을까.
기획과 구성도 훌륭하다. 김수영의 삶과 시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사전에 선정된 26개의 키워드들을 통해 ‘참여시인’의 면모가 주로 알려진 그의 시와 글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촘촘히 도와준다. 그 키워드를 다시 시인의 연대기순으로 배치해, 시대를 살았던 시인 김수영을 속 시끄러운 시대를 살아낸 한 개인으로 먼저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책 중간 중간 삽입된 김수영의 맨들맨들한 조약돌 같은 글씨체의 육필 원고나, 흘러가는 글들을 떠내려 가도록 그냥 두지 않겠다는 듯이 빠르게 휘갈겨 써 내려간 듯한 육필 원고의 스캔본들도 흥미롭다.
이 책은 이런 모든 요소들로 김수영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이 책을 덮은 이후 김수영과 그의 글들을 더 알아가보고 싶도록 편집되어 있다.
책의 표지 디자인도 ’참여시인’으로 (보편적으로는) 평면적으로만 알려져 온 김수영이 사실은 다양한 키워드로 해석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담아낸 듯하다. 알 수 없는 기호들을 픽셀 삼아 가장 잘 알려진 김수영의 초상을 표지 전면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는 내가 왜 김수영을 좋아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얻었다. 그의 시에서 나타난 탄식과 비소의 정서를 ‘섹시해서 좋아한다’고만 빈약하게 설명해왔는데, 이 책의 글들을 통해 내가 그를 ‘섹시하게’ 느꼈던 이유는 그가 고민하고 싶지 않아 판단을 먼저 하는 시대 안에서 꾸준히 고민하는 사람이었다는 점 때문이라고 좀 더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고민의 뿌리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는 그의 시를 좋아해왔었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시대 남성의 한계일 수도 있으나 그 혐의가 분명한 김수영 시 속의 여혐은 사랑과 거리가 멀지만, 그의 세계를 다 부정하기보다 그의 세계를 딛고 그의 사랑을 넘어 선 사랑을 말하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
날이 뜨거워지는 여름이 온다. 사람을, 사회를, 역사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길 희망하고 나의 부족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는 날에 이르는 당신에게, 뜨거운 사랑으로 김수영을, 김수영과 만나는 통로로 이 책,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