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참 바보처럼 살다 가셨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었는데도
그는 바보처럼 좋은 옷 대신에 소매가 닳아빠진 옷을 입었고
멋진 차 대신에 버스를 타거나 남의 차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교회를 대물림 해주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사랑하는 외아들을 먼 외국으로 쫓아내다시피 했습니다.
새까만 후배목사들이 통일운동에 앞장선다면서
북녘땅을 제집 드나들 듯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릴 때도
그는 참 바보처럼 ‘저 많은 실향민들이 고향엘 가지 못하는데
어찌 나 혼자만 가겠는가’ 하면서
그리운 고향 땅을 한번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사자후 같은 명설교도,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감동적인 웅변도 할 줄 몰랐던 그는
그저 바보처럼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손과 발로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 설교하고 선포했을 뿐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입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발을 가졌던
이 바보같은 목사님의 이름은 한경직입니다.”
위의 인용글은 지난 2000년 4월 19일에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의 빈소에 올려진 글의 한 대목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막짓는 일을 하며 자비량 선교를 했습니다.
20여년에 걸친 전도여행 중에 수없이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바울은 편안한 선교를 거절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며 선교하는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피땀으로 세워진 교회로부터
보수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복음에 장애가 될 것을 염려하여 보수를 거절하고
끝까지 자비량 선교를 고집했습니다(고전9장).
그는 참 바보처럼 돈을 거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검소’라는 단어를 그에게 붙이기 부끄러울 정도로
그는 내핍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바울은 풍부와 궁핍에 처하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빌4:12).
이상은 김형근님의 글이었습니다
저는 사도바울과 한경직 목사와 같은 사람들과,
오늘날 한국교회의 여러 교계 지도자들을 비교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걸었던 좁은 길을 그들도 가고 있을까?
자기를 부인하고, 이름도 빛도 없이 매일 죽어야 갈 수 있는
험난한 십자가의 길을..그들도 걸어가고 있을까요?
세습이라는 말은! 절대권력이나 큰 부와 명예를 가졌을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단어입니다. 나눔을 실천했어야 할 자들이
부와 명예와 권세를 두 손에 움켜쥔 채, 자기배를 불리다가
그것도 모자라, 자식에게 부귀영광을 세습하는 모습을 봅니다.
소자의 발을 씻기고, 가난한 자들과 나누고,약자를 돌보는 대신
가난한 자와 약자를 이용하고, 양들 위에 섯노라며
하나님의 권위를 업고,큰소리치는 모습을 더 많이 봅니다.
사람에게 맹종하며, 보이는(금송아지)우상처럼 떠 받들거나
작은 교황들이 되게 도우며,독재에 방조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진리의 성령은, 거짓과 왜곡,부패와 타락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왜곡된 복음에 현혹되고 있는 영혼들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우리는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여, 지혜롭게 선악을 분별하고
주님과 제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 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우리는 할수없다.
하지만 우리 없이 하나님은 일하지 않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