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이 되자 외부인들은 모두 돌아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극심한 절망에 빠져 저녁 내내 울었던 아이들을 잠자리에 눕힌 다음, 우리 세 사람(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고인의 시신 옆에 있을 수 있었다. 운명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 마지막 밤을 떠올린다. 그날 밤 나의 소중한 남편은 온전히 우리 가족에게 속해 있었다. 나는 보는 사람들이 없는 가운데서 거리낌없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비통한 심경을 토로하며 마음껏 울었고, 고인의 명복을 간절히 빌었다. 또 가정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졌던 사소한 다툼들, 언제나 뜨겁게 나를 사랑했던 남편을 내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기분 상하게 만들었을지 모르는 모든 일들에 대해 고인에게 용서를 빌었다.

-알라딘 eBook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 지음, 최호정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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