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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우리는 운명에 대한 작품들이 느와르적 형식을 띄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불가해함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늘 삶과도 죽음과도 극단적으로 가까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다 보니 파생된 경우의 수들일 것이다. 매일이 무료해 ‘사는 것 같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매일 목숨을 걸지만 ‘지독하게 살아있는’ 삶도 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또 이러한 삶과 죽음의 머리위에는 운명이라는 너무나도 위력적이고 제멋대로의 불가항력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운명의 존재를 그것과 마주쳤을때라야 깨닫는다. <쓰리>는 결국, 삶과 죽음 그 양가적인 삶의 본질을 매개하는 감각, 그리고 운명에 대한 소설이다. 즉 삶의 정체에 대한 소설이다. <쓰리>에는 죽음에 가까운 듯 보이지만 맹렬하게 살아있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삶은 오히려 죽음과 가까울 때 가장 격렬하다. 이 소설에서 ‘생’이라는 가치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죽고,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 애정을 가졌던 인물들의 죽음조차 특별한 위상을 가질 수 없다. 결국 누구든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고, 삶은 우리가 통제하기에는 너무 위력적이다. 우리는 우리와 같이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또 다른 사람에게 조차 ‘결정지어’지며, 이것은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보편적인 상황이다. 나의 절체절명의 상황은 누군가가 장난삼아 던진 어떤 것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쓰리>는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변은 소설에 있다.
<쓰리>의 마지막 장을 떠올려 보자. 낯선 여자를 향해 날아가는 동전과 그 동전이 그리는 포물선을. 여자에게 가 닿을지 아닐지 모르는 그 동전의 종착지를. 그곳이 어디이건 우리는 이 장면에서 맹렬히 살아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운명의 거대한 그림자와 홀로 싸우며 발버둥치고 있는 생의 환한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쓰리>는 오에겐자부로 상 수상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하드보일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문체가 돋보인다. 재미난 소재를 취하고 있고 그 소재를 잘 살릴 수 있는 스릴있고 가독성이 강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장편이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통찰력과 주제에 대한 미학적 깊이 역시 보여준다. 또한 특정한 삶의 영역에 대한 흥미와 그 리얼리티를 고취시키는 매력적인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다. <쓰리>는 그래서, 여러모로 완성도가 높은 ‘좋은’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 대한 ‘보편적 기대’를 만족시키면서도 다양한 독자를 수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