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9:3-7
당신은 살아 있는 사람입니까?
(산 자는 참예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이산가족이 50년만에 그리던 혈육을 만나는 광경을 보고 세계가 울었습니다.
혈육은 강하고 뜨거운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준 드라마와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50년만에 이루어지는 상봉을 불과 이틀 앞두고 별세하셔서 참예하지 못한 분도 있고, 꿈에도 그리던 얼굴을 만나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했지만 이미 돌아 가신 분을 만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남한은 텔레비전이 이산가족확인에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온 국민들에게 보급되어 있는 텔레비전을 통하여 북한에서 남한에 있는 가족을 찾는 자들의 명단이 발표되면서 상봉절차가 매끄럽게 진행되었습니다만 북한에서는 110세의 오마니가 살아계신다는 소식에 천만이산가족들의 부러움을 샀던 분이 상봉날짜 불과 사흘 전에 이미 40년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 확인되어서 온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에 가족을 만난 이들은 세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는데 중요한 것은 살아있었기 때문에 참예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계속될 것이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살아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남한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혹 부모님을 만난 경우가 있습니다만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북한을 방문한 사람 중에 의사자격으로 참여한 한 분 외는 부모님을 만난 경우가 없었습니다. 이 세대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가 붙들어 맬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살아 있습니까? 세상만사는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하여도 산 자만이 참예할 수 있고, 비록 하찮은 것이지만 죽은 자는 참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살아 있다고 한다면 산 자의 특권을 행사하십시오. 기독교 신앙은 산 자의 것입니다. 산자만이 참예할 수 있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산 자만이 죽을줄을압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남은 죽을줄 알면서 자기가 죽는줄은 모릅니다.
살아 있는 자는 죽을줄을 알아야 합니다. 죽을줄 모르는 사람은 그 인생을 참되게 살 수 없습니다.
죽는줄 아는자만이 죽음을 예비할 수 있습니다.
시편 116:15에서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고 하십니다.
왜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십니까? 그 이유가 시편 116:12-14에 말씀하십니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성도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하겠느냐는 마음으로 여호와의이름을 부르며 서원을 갚으며 하나님 앞에서의 삶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16이하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한 해 농사를 열심히 지었습니다. 그 해에 곡식을 쌓아둘 곳이 부족할 정도로 소출이 풍성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이 다 자기가 열심히 일한 대가라고 생각하며 곡간을 더 크게 지어서 곡식을 쌓고 말합니다.
"내 영혼아 곡간에 곡식이 풍성하니 이제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죽기로 각오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주기철목사님은 일본형사들이 그렇게 회유하고 괴롭힐 때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무릎꿇었지만 그는 일사각오로 살아?ㅆ기 때문에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죽은 자는 죽는 것을 모릅니다. 말 없이 누워 있습니다. 요즘 한 일 년 동안 가보지를 못했습니다만 지난 여름까지만해도 그저 일년에 몇 번 공동묘지를 가봅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동묘지에 가면 인생을 생각할 수 있고 죽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수많은 묘에 누워있는 자들이 일어날 것같습니다. 그래서 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심정으로 소리를 처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분을 위해 충성합시다. 할렐루야!!!'
아멘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막 일어나서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할 것 같은데도 아멘하며 일어서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하, 여기가 공동묘지구나는 생각이 들면 괜히 무서워서 걸음아 날살려라 하고 쫓아 내려오기도 합니다.
산 자의 특권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예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펄전목사님의 "지금 하십시오"라는 시가 있습니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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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야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산 자만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피조물 중에 웃을줄 아는 것은 인간 뿐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웃을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산 자만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세상을 사는데는 낙을 누리는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이는 막가는 인생을 살면서 그것을 낙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서 낙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에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짐승도 종류대로 수 많은 짐승을 만드셨습니다. 새도 그 종류도 수 많은 새를 만드셨고, 물고기도 그 종류대로 수 많은 물고기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실 때마다 좋았더라 고 하십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기사는 이 두가지 면에서 다른 피조물과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종류대로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사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시고는 심히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이는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피조물은 같은 과에서 혼합생명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그 무엇과도 혼합인간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는 그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 저녁에 말씀드린대로 사람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습니다. 사실 원문은 천사가 아니라 엘로힘 즉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우리가 어찌 인생을 그렇게 막 살 수 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 속에서 낙을 누리는 즐거운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 칠주년을 맞이 하였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므로 칠 년을 수일처럼 여기며 봉사하였습니다. 야곱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의 사업에 협력하고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새천년 가을에 내가 살아 있음을 알고 주의 나라와 그 역사에 감사와 기쁨으로 참예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