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1 - 도둑까치 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 책에는 어떤 색깔 같은 것이 있어서 그의 책인지 모른 채 작품을 읽어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 ‘이것을 하루키가 썼구나.’ 하고 알 수 있다. 일본 소설가 중 요시모토 바나나도 비슷하다. 그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문체, 소재 같은 것이 어떤 고유한 주파수가 있어서 작품에 지문처럼 흔적이 남는 것이다.

하루키도 비슷한데, 배경 선택에서부터 보면 약간 어긋난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현실에서 약간 벌어진 틈이 있고 그 틈을 통해 들어가면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는 다른 차원의 법칙과 규칙이 존재하는 세계다. 거울 나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데 그 정도로 이상한 나라는 아니지만 공고하고 지루한 현실과는 다른 평행 우주다. 주인공도 어떤 비슷한 경향이 있는데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현실을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관찰자 특성을 가지고 있다. 관조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그런 무심함이 타인의 관심과 호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의 최초 상실의 시대에서도 비슷한 배경과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배경 선택에 대한 상징인 우물이 나타난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들판의 우물. 그 벌어진 틈으로 가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 우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오코는 와타나베 옆에 붙어있는 것이다. 그 우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벌어진 틈이다. 와타나베는 현실을 관조하는 어쩌면 구원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태엽감는 새>에서 나오는 오카타는 현실에 맞지 않는, 아니 오히려 무심한 캐릭터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지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어쩌면 현실 부적응자일 것이다. 아내 구미코가 먹여 살리는 나날 중, 현실이 약간씩 어긋나며 틈을 보이기 시작한다. 기르던 고양이의 실종, 고양이를 찾기 위해 영매를 만나는데,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아내가 집을 나간다.
아내가 집을 나간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오카다는 어긋난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다. 그 세계에 군림하는 아내의 오빠 노보루가 있는 것이다. 노보루는 겉으로는 모범적이고 그럴싸한 인물이지만 어둠과 악의 상징이고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무력한 오카다는 과연 그런 대단한 인물과의 대결에서 이겨낼 수 있는 것일까?

이야기에서 본 줄기와는 다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전개되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든다. 각각의 이야기는 별개고 독립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조화로운 한 부분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몽고의 마른 우물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군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우물에서 간신히 목숨을 구해 살아 나오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오카다는 폐가의 버려진 우물을 통해 어긋난 세계로 들어가는 힌트를 얻는다.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하루키의 책은 흥미진진하고 한 번 손에 들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정형화된 패턴이 있어서 ‘뭐, 하루키가 그렇지.’ 하는 생각도 있다. <태엽감는 새>도 비슷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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