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롭스 & 뭉크 판화전

요즘은 미술 전시회 소식만 전하는 일로도 1년을 다 채울 수 있을 듯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도 진리이지만, "세상은 언제나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넓다"는 것도 진리이다. 예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언제나 이 두 가지 진리를 반복적으로 증언해준다. 펠리시엥 롭스와 에드바르트 뭉크의 2인 판화전에 개최된다고 한다. 솔직히 롭스란 화가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다. 관련기사들을 옮겨놓는다. 발걸음이 또 미칠 지 어찌 알겠는가...

한국일보(06. 08. 14) 팜므파탈… 치명적인 아름다움 뒤의 풍자

-유럽 역사에서 19세기 말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를 ‘벨 에포크’(Belle Epoqueㆍ아름다운 시절)라고 부른다. 풍요와 퇴폐, 쾌락과 죽음이 우아하게 쌍을 이루던 그 시절 문학과 예술의 최고 인기 품목 중 하나는 팜므 파탈(femme fatalㆍ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자)이다. 이건 남자들의 발명품이다. 19세기 중반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들이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하자 그에 대한 경계심이 팜므 파탈로 나타난 것이다.(*벨 에포크에 대해서는 빌리 하스의 <세기말과 세기초>(까치글방, 1994)란 책이 오래전에 출간된 바 있다. 미술에서의 팜므파탈 이미지에 대해서는 이명옥의 <팜므파탈>(다빈지, 2003) 참조).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롭스와 뭉크’ 판화전의 키워드는 팜므 파탈이다. 19세기 벨기에 판화가 겸 풍자화가 펠리시엥 롭스(1833~1898)와, 그보다 서른 살 아래로 20세기 초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노르웨이 작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판화 98점을 선보이고 있다.

-두 작가 모두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인데도, 우리나라에 작품이 오기는 처음이다. 뭉크는 매우 유명한데도 그렇고, 롭스는 이름조차 낯설다. 롭스와 뭉크는 세기말 악마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표현주의에 이르는 미술사조의 흐름 속에 있다.

-롭스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빌어 시대와 사회를 풍자했다. 여자, 어리석음, 그리고 죽음이 주도하는 세계를 표현했다. 치부를 드러내고 눈을 가린 채 돼지(성욕의 상징)의 인도를 받으며 위협적일 만큼 당당하게 걸어가는 창녀(‘창부정치가’)나 칼을 숨긴 채 높이 쳐든 손바닥에 남자를 올려놓고 조롱하는 여자(‘꼭두각시를 든 부인’)는 세계를 지배하는 팜므 파탈의 파괴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사탄이 지배하는 악마적 세계,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 유혹, 파멸을 부르는 어리석음을 팜므 파탈과 연결짓고 있다. “여성의 냉혹한 눈짓, 숨기지도 위장하지도 않고 온몸으로 명백하게 드러내는 남성에 대한 적개심 등 롭스는 현대여성의 잔인한 측면을 묘사하는 데 정말 뛰어나다.”(롭스와 교유했던 프랑스인 공쿠르 형제의 평)

-뭉크에게 여자는 사랑스러우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그의 대표작 ‘마돈나'는 여인의 멍한 눈과 소용돌이치듯 불안하게 흘러내리는 선으로 쾌락의 절정, 곧 죽음을 암시하면서 웅크린 태아와 정충으로 테두리를 장식해 염세적인 공포를 배가하고 있다. 또 다른 작품 ‘흡혈귀’는 고개를 숙인 채 남자의 목에 입술을 갖다 대는 여자의 모습이 마치 피를 빠는 듯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피해망상에 가까운 이런 두려움은 병약하고 신경질적이었던 뭉크의 기질 탓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뭉크 자신은 20, 30대 청년시절을 회고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여성 해방의 한복판에서 무상한 시대를 살았다. 남성을 유혹하고, 사로잡고, 기만한 것은 여성이었다. 카르멘의 시대. 이 무상한 시대에 남성은 더 연약한 성(性)이 되었다.”

 

 

 



-뭉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의 잇따른 죽음과 아버지의 우울증 때문에 평생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쾌활하고 방자하게 사회 풍자 놀음을 즐긴 롭스와 달리 뭉크는 철저히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 인간 실존의 어둠과 고독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벨기에 트랜스페트롤 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했으며, 브뤼셀-서울-오슬로 순회전이다. 전시는 10월 22일까지. (02)2022-0600(오미환 기자)

 

국민일보(06. 08. 14) 19세기말 여성 이미지 들춰보기

-팜므파탈, 그 치명적인 이미지가 난무하던 19세기 말 유럽은 새로운 여성상과 남성상이 극렬하게 대립했다. 이 시기에 유럽에서 활동했던 벨기에의 판화가이자 풍자화가였던 롭스(Felicien Rops,1833∼1898)와 효현주의 대표작가 뭉크(Edvard Munch,1863∼1944)는 정치적,사회적 해방을 요구하는 여성에 대한 경계심을 작품에 반영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윤수)은 이들의 판화작품을 모은 ‘롭스와 뭉크:남자와 여자’ 전을 지난 11일 개막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두 작가의 작품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롭스가 사회를 풍자하면서 시대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인 작가라면,뭉크는 자신의 감성을 철저히 파고들어 객관화시킨 작가이다. 롭스의 작품들은 ‘풍자의 손’으로 관람객의 눈길을 잡아 당기지만 뭉크의 작품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 정적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는 세대를 이은 상징주의적 표현과 ‘팜므 파탈’이라는 여성관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 롭스는 세기말 사회에 대한 영향으로,뭉크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형성된 여성관이란 차이점이 있다.

-롭스의 어린시절이야기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다. 가정교사를 두고 교육을 받은 덕에 자유로운 유년기를 보냈고 브뤼셀에 들어가 학교 수업보다는 주간지의 삽화가로 시간을 많이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보들레르의 대표시집 ‘악의 꽃’에 삽화를 그렸던 그는 ‘악마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해악함으로써 시대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작품들을 생산해냈다. 대표작 ‘창부정치가’는 벌거벗은 창녀가 눈을 가린 채 돼지의 인도를 받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가릴 곳은 가리지 않고,반대로 드러낼 곳은 모두 가린 묘사로 여인의 누드를 강조해 사악함을 드러낸다. ‘꼭두각시를 든 부인’은 칼을 숨긴 채 꼭두각시를 치켜들고 있는 여자를 묘사해 여자는 남자를 파멸시키는데 그치지않고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악마적인 존재로 그렸다. 이번에 그의 61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로서 국내에 많이 알려진 뭉크는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우울한 성격,다섯 살 때 겪은 어머니의 죽음, 병약한 자신의 건강,두 살 위의 누나의 죽음 등으로 죽음의 공포와 불안은 평생 동안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런 병적인 상태는 오히려 수많은 걸작을 생산해내는 밑바탕이 되었다.

-대표작 ‘마돈나’는 역동적인 곡선과 함께 여자의 황홀한 표정이 잘 드러난다. 뭉크에게 마돈나는 사랑의 상징이자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팜므 파탈의 여성으로 대변된다. 뭉크는 유화에서부터 판화에 이르기까지 사랑,불안,죽음에 이르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예술작품으로 승화해 표현주의라는 거대한 시대의 물결을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 그 유명한 ‘절규’는 오지 못했지만 ‘마돈나’와 어린시절 죽은 누나의 옆모습을 그린 ‘병든아이’,10대 소녀의 공포감을 나타낸 ‘사춘기’ 등 주요작품 37점이 전시됐다. 한편 ‘롭스와 뭉크:남자와 여자’ 전은 벨기에 크랜스페트롤 재단이 14개 소장처의 작품을 모아 기획한 전시로 10월 22일까지 계속된다.(이지현 기자)

06. 08. 14 -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달랑베르의 꿈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철학자 드니 디드로(1713-1784)의 <달랑베르의 꿈>(한길사, 2006)이 출간됐다. 지난주의 일이고, 최근에 나온 책들 '작업실'에 올라와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그냥 따로 자리를 만든다. 책의 '명성'만을 알고 있는 탓에 일단은 전문가 서평을 읽어보는 걸로 대신하면서.

 

 

 

 

아직 <달랑베르의 꿈>은 구입하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번역/소개된 디드로의 책들은 <회화론>(영남대출판부, 2004)를 제외하면 다 갖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황현산 교수가 번역한 <라모의 조카>(고려대출판부, 2006)가 재출간됐는데, 물론 그것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봐야 몇 권 되지 않는다. <운명론자 자크>(현대소설사, 1992)로 시작해서(밀란 쿤데라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다) <수녀>(장원, 1993)와 <라모의 조카>(세계사, 1998)를 거쳐서 <배우에 관한 역설>(문학과지성사, 2001)을 지나 <부갱빌 여행기 보유>(도서출판 숲, 2003)에 이르는 여정이니까 보유(부록)를 포함한다고 해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중 어떤 책은 불어본과 영역본도 갖고 있고, 재작년에 구입한 러시아어본 선집 한권도 소장도서이다. 그 선집은 짝이 맞지 않는 책이지만 디드로의 대표작들은 거의 다 들어가 있다. <달랑베르의 꿈>을 포함해서.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 좀 의아했는데, 서평을 읽어보니까 원래는 3부작으로 구성된 책이고 국역본은 그걸 옮긴 것이다.

교수신문(06. 11. 05)  感性에 대한 철학...꿈같은 서술 매력

중세 신의 품안에서 아직 미지각의 상태로 잠들어 있는 인간들에게 이성의 빛을 던져주고, 구질서의 편견이나 미망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계몽주의의 완결판인 ‘백과사전’의 편찬을 주도적으로 총괄했던 디드로. 기존의 사고체계를 혁신하고 새로운 질서를 기획했던 이 백과사전파 학자는 또 개인적으로 생물과 화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간파하고, 특히 유물론자로서 현상의 총체적 이해, 현상들의 내적 연관성,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새로운 우주관을 완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저작물을 생산했는데, 그 가장 중요한 결실이 바로 ‘달랑베르의 꿈’(1769)이다.

이 책은 선적인 명확한 구성을 갖춘 3부작(1부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대담, 2부 달랑베르의 꿈, 3부 대담후기)으로 이뤄진, 생명의 기원과 우주 생성론을 다룬 철학 텍스트다. 디드로는 이 텍스트에서 물질의 보편적 속성을 감성으로 보고, 동양학의 氣論이 그런 것처럼, 그 감성의 聚散을 통해 우주만물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으면 마치 최한기의 ‘神氣通’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육체와 영혼의 분리나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가치를 부여하길 거부함으로써 디드로는 관념론적 철학의 논제를 극복하고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배제하며, 우주에 대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런데 ‘달랑베르의 꿈’은 동일한 주제를 다룬 당대의 다른 철학 텍스트와 비교해보면, 아주 특이한 형식으로 서술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특이함은 대화, 꿈, 은유와 같은 문학적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대화라는 문학적 형식은, 디드로가 생산한 작품들의 전매특허이듯이, 이 텍스트 속에서도 철저히 라이트모티프(leitmotif) 역할을 하고 있다. 텍스트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대화는, 모든 대화자들이 하나의 주장을 이뤄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다. 이처럼 대화는, 자칫 단조롭고 따분하며 현학적이 쉬운 철학적 담론에 일상 언어가 갖는 생동감과 현실감과 자연스러움을 불어넣어, 力說이 逆說이 되지 않도록 하는 문학적 형식이 된다. 그리고 텍스트 속에 꿈의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디드로는 일상적인 담론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사실들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꿈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한 인식과 이성적 분석을 넘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랑베르의 꿈’에서 은유는, 다소 역설적이긴 하나, 철학적 개념을 전달하는 가장 문학적인 형식이 된다. 한 단어나 이미지, 개념의 형태가 원래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로 이동할 때마다 유사성에 근거한 은유가 등장한다. 무수히 많은 작은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벌 송이나 인간의 사고 작용과 현의 공명 현상을 비유하는 클라브생, 감각과 의식의 문제를 다루는 거미의 이미지는 추상적인 것을 물질화하고,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며, 불투명한 것을 자명한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달랑베르의 꿈’은 이처럼 철학적 내용과 문학적 형식이 어우러지는 행복한 만남의 공간이다.

'달랑베르의 꿈’은 이번에 처음 번역됐다. 이 책의 번역작업은 생명의 기원이나 감각작용, 사고작용 등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던 18세기의 사고방식과 표현을 현대적으로 옮겨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텍스트에서 장황하게 우회적으로 설명된 사실들을 21세기의 독자들은 이미 알고, 그래서 그들은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소위 ‘옛날’의 표현들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事象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을 문학적 우회를 통해 표현한 작품의 번역은 특히 용어의 정확성과 표현의 매끄러움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또한 생물학적 유물론을 대화의 틀 속에 담아낸 이 작품의 경우, 개별적인 대화의 분위기와 개념적 이해가 어우러진 특징을 살려내야 하고, 당시 학계와 문단을 풍미하던 이론들과 사교계의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중의 어려움이 있다. 더불어 디드로 특유의 문체, 즉 확장 지향적이고 즉흥적인, 수다스런 분위기를 살려내야 하는 부담이 가중된다. 이런 컨텍스트의 특징들을 옮긴이가 충분히 살려 내려 노력했지만 아주 만족스럽진 않다. 하지만 현재 출판계의 번역상황을 감안한다면 18세기 작품이 출판됐다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 더욱이 소위 장르혼합이 이뤄진 ‘생경하고 어려운’ 작품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문재은/  한국외대·불문학) 

06. 11. 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리차드 세넷과 '현대의 침몰'

결혼식에 갔다가 문학평론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책을 한권 선물받았다. 리차드 세네트의 <현대의 침몰: 현대 자본주의의 해부>(일월서각, 1982)가 그것인데, 거의 25년전에 나온 책이니 절판된 건 당연하고 헌책방에서나 가끔 눈에 띄는 책이겠다(그런데 내 기억에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걸로 보아 80년대 후반에도 드물었던 책이지 않나 싶다). '헌책다운' 이 책에는 초판을 찍은 날짜만이 박혀 있다.

원서는 1976년에 초판이 나온 듯하고 지난 1992년에 장정을 달리 해서 재출간되었다. 국역본은 그 사이에 나온 것인데, 다소 두툼한 책이지만 재번역돼 나왔으면 싶다. '현대의 침몰'이라고 옮겨졌지만 원제는 '공정 인간의 몰락' 정도가 될 듯하고 원래의 부제는 '현대자본주의의 해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사회심리학에 대하여'이다. 1장인 '공적 영역'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데이비드 리즈먼의 <고독한 군중>과 유사한 성격의 책이지 않나 싶다(1950년대에 나온 리즈먼의 책이 훨씬 먼저 출간됐지만).

 

 

 

 

국내에는 리차드 세네트의 책이 더 출간돼 있는데, '세넷'이라고 검색해야 한다. <현대의 침몰> 외에 나와 있는 것으로는 <불평등사회의 인간존중>(문예출판사, 2004),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문예출판사, 2002), 그리고 <살과 돌: 서구문명에서 육체와 도시>(문화과학사, 1999)가 있는데, 모두 눈에 익은 책들이고 <살과 돌>은 특히 (제목 때문에) 벼르다가 끝내 구입하지는 못했던 책이다(품절됐군!). 겸사겸사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공적 영역/공간과 관련하여 물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다. 거기에서 암시받을 수 있지만, '공적 인간'이란 '정치적 인간'이며 '호모 폴리티쿠스'를 뜻한다. 최인훈의 통찰을 빌면, (남한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는 '밀실'만 있고 '광장'은 상실했다는 것. 그것이 세네트의 문제의식이 아닐까 넘겨짚어본다.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것 정도로 '공적 인간'의 소임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건 그저 알리바이일 뿐이다. 영어표현을 빌면, 우리의 관심은 '정치(politics)'에서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로 확장돼 나가야 하며 우리의 '행위'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바야흐로 대선과 맞물린 '정치의 계절'을 불과 1년 남겨놓고 있다. 우리가 마저 '침몰'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빨리 챙겨두어야겠다...

06. 11. 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메리와 앙투아네트(진행중)

두 명의 '퀸'에 대한 평전이 출간됐다. 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이고, 프랑스 루이 14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른 한 사람이다. 평전류를 즐기는 독자라면 이 걸출한 여성들과 함께 부듯한 연말을 보낼 수 있겠다. 두 책과 관련한 기사와 관련자료들을 모아보기로 한다.

 

 

 

 

 

현재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탁월한 재능을 갖춘 전설적인 미인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는 진정 불운한 군주였을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지은이 캐럴 쉐퍼가 여왕 메리의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흥미로운 사건들과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렸다. 지은이는 여왕 메리의 추종자에 가까운 입장을 견지하며, 그녀를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세심한 자료 조사를 통해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여왕 메리를 순교자로 되살리고 있다.

잉글랜드의 왕위를 놓고 엘리자베스 1세와 갈등을 빚던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일고 있다.

세번 결혼해 남편들을 모두 비운에 죽게 만든 요부, 신구교간의 갈등을 부추겨 결국 자신도 참수된 비극적인 여인, 불운했지만 훌륭한 군주의 자질을 갖췄던 절세 미인이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저자는 여왕 메리의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여왕 메리를 순교자로 되살리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메리는 뛰어난 지도자이자 신앙심 깊은 여인, 시인으로 재탄생한다.

 

 

 

 

 

 

 

 

 

 

 

안토니아 프레이저

역사가이자 소설가이고, 고전기작가로 이다. 현재 극작가인 해롤드 핀터와 결혼하여 런던에서 살고 있다. 1969년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를 발효 한 후에 <크롬웰, 우리의 호민관> <찰스 2세> <나약한 성 : 17세기 영국 여성의 운명> 드의 책을 집필 했으며, 제미마 쇼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일련의 미스터리 소설을 써 왔으며, 이 탐정소설은 1983년 영국 텔레비전 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했다.

 

문화일보(06. 11.24) 그녀는 사치의 화신이었나, 佛 격동의 ‘희생양’ 이었나

젊은 만화마니아뿐 아니라 1970년대 초반 학창시절을 보낸 중장 년층 중에도 마리 앙투아네트왕비, 넓게는 프랑스 혹은 프랑스혁명을 주목하게 된 계기로 일본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지 목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프랑스혁명 직전,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한 오스트리아공주를 둘러싼 격동기의 프랑스를 다룬 이 작 품은 만화영화로도 소개되며 18세기 중후반의 유럽 왕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과 존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렸다.

앙투아네트는 서른여덟해의 길지 않은 생애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과 비참한 감옥 등 양극을 경험한 인생 역정의 주인공. 1755년 ‘유럽의 열강’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여왕의 열다섯번째 아이로 태어난 그는 14세때 프랑스 루이16세와 결혼,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1793년 참수됐다. 이같은 연대기 이면에 변혁기 유럽사의 주요 순간을 증언하는 그녀에 대한 세평은 지금도 열성 적인 찬미와 맹렬한 비방이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대중문화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 속 비운의 주인공처럼 소개됐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두툼한 전기를 통해 실존했던 역사인물로 생 생하게 되살아난다. 저자는 스코틀랜드 메리여왕, 영국의 헨리 8세와 크롬웰,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 전기 등을 집필한 작가.

보통 책의 2, 3배 분량의 이 책은 앙투아네트와 주변 인물의 초 상화부터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참수 직전의 모습까지 다양한 사진을 갖추며, 연대기순으로 826쪽에 걸쳐 왕녀의 인생 을 다룬다. 출생 무렵의 유럽 정세부터, 적대국인 오스트리아 출신 아내를 맞은 프랑스 황태자와 프랑스인의 마음가짐, 탐욕스러운 동성애라는 식의 각종 추문이나 참담한 감옥생활을 비롯, “그 오스트리아 여자의 머리를 내놓으라”는 광분한 군중 앞에서 참 수되기까지.

“세상물정 모르는 앙투아네트가 먹을 빵이 없다는 사람에게 케 이크를 먹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지만, 과연 그녀는 사치하고 음란한 성욕의 화신이며 프랑스혁명의 결정적 계기였던 인 물인가.

유럽 각국의 왕실자료보관소 등에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왕녀가 나고 자란 곳을 직접 둘러본 작가는 앙투아네트이야기 중 ‘잔인한 신화와 음란한 왜곡’에 대한 반증을 제시한다. 프랑스속 오 스트리아 여자였던 그녀는 결혼뿐 아니라 죽음까지 국가적 전략 과 이해타산에 좌우된 희생자였다는 것. 당시 유럽왕실의 혼인동맹과 프랑스 왕의 외교적 수완에 따라 비정치적이고 여린 그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타락한 마녀, 기품없는 섹스파티의 상징 처럼 악평을 받아왔다는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신세미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로마인 이야기'의 종언

오늘 아침신문들을 들춰본 이라면 온갖 신문들이 최근 <로마인 이야기>(전15권)를 완간한 일본의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 인터뷰로 도배돼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을 전철에서 읽었는데, 두 신문 모두 거의 전면이 그녀에게 할애돼 있다. 인터넷에서 다른 신문들을 검색해봐도 사정은 비슷한다. 과연, 어느 한국작가의 책이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아주 드문 경우 아닌가?).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평가는 일반 대중과 역사가들의 평이 사뭇 갈리지만 15년간 매년 한 권씩 출간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낸 저자의 의지와 노고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할 만하다. 비록 나로선 <로마인 이야기>를 집어들 엄두는 내지 못하고 고작 두어 권의 에세이를 읽는 데 그쳤지만 말이다. 내년/내달초에 마지막 15권이 번역돼 나올 거라고 하는데, 작가와 역자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고 잠시 '로마 제국'에 대해서 음미해본다.

경향신문(06. 12. 18) 시오노 나나미 “천년로마 비결은 공존의 지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69)는 1992년 ‘로마인 이야기’의 제1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를 출간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이 책을 2006년까지 해마다 한 권씩 발표해 전 15권으로 완결짓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작가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제2권 ‘한니발 전쟁’을, 94년엔 제3권 ‘승자의 혼미’를 발표하는 등 매년 어김없이 약속을 지켰다. 1년의 절반은 자료를 읽고, 나머지 절반은 집필에 매달려온 산고(産苦)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제15권 ‘로마세계의 종언’을 내놓으면서 ‘로마 천년사’를 담은 방대한 저작의 마침표를 찍었다.



“민족, 생각, 습관, 종교 등이 다른 사람들이 공생하는 게 가능했던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쓰고자 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의 존재를 위협하고 인정하지 않는 비관용의 세계입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다른 생각을 갖고도 함께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책을 읽어줬으면 합니다.”

23일 도쿄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만난 시오노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15년분을 한꺼번에 인터뷰하느라 책을 끝낸 감회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면서도 “확실한 사실은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여름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고희(古稀)를 눈 앞에 둔 노작가는 국가경영, 리더십, 한·일 관계 등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로마인들이 왜 그토록 번영할 수 있었을까.” ‘로마인 이야기’의 집필은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이같은 물음을 그 스스로 풀어가는 과정이었다. 시오노는 로마가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를 묻자 “로마인이 모두 해먹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민족이 더 뛰어나면 그 사람에게 충분히 맡겼다는 점”이라고 간명하게 답했다. 그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관련, “가장 나쁜 건 힘과 정신력이 있는데도 눈 앞의 이익을 보고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작은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큰 걸 놓치게 된다”면서 “일본인에겐 내셔널리즘이 이런 경우”라고도 했다. 그는 또 “조직의 성원 모두를 위해 자기 배를 채우지 않는 것”을 리더의 첫째 요건으로 들었다.

“인터뷰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라는 한·일 관계에 대해선 열띤 답변이 길게 이어졌다. 그는 “역사적인 사실은 공유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인식은 공유하기 힘들다”면서 “한국에선 독도, 일본에선 다케시마라 부르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역사를 만들기보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책을 써서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적 열광과 내셔널리즘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타협점을 찾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와 비교되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은 그럴 각오도, 의욕도 없다”는 것이다. 이어 ‘팍스 차이니즈’를 거론하면서 “팍스와 패권(헤게모니)은 다른데 중국이 패권을 잡고 나서 국제질서를 이루려는 의욕이 있을까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시오노는 “역사는 위대한 교훈이자 탁월한 오락”이라고 말해왔다. ‘로마인 이야기’는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면서 광범위한 독자층을 형성했다. 그는 “역사학자들은 역사가 재미있다고 말하면 자신의 권위가 떨어지니까 그같은 자세 자체를 거부한다”고 꼬집었다. “역사에 어둡다는 것은 인간에 어둡다는 뜻입니다. 역사란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니까 잘 읽으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인간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어요.”

마지막권인 제15권은 로마 제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15일 일본 신초사(新潮社) 출판사에서 출간됐으며 국내에서는 한길사에서 내년 1~2월에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시오노는 “국가로서의 종말이 아니라 로마 문명의 종말을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로마 세계의 종말은 지중해의 수평선 위에 이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할 때, 다신교의 세계가 일신교의 세계가 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서로마가 멸망한 476년이 아니라 7세기를 마지막으로 잡은 이유입니다.”

향후 집필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힌 시오노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얌전한 남자를 그리고 싶다”며 미소지었다.(도쿄|김진우기자) 

◇“철저한 고증…빈틈은 상상으로 메워”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등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했다. 가쿠슈인(學習院)대를 선택한 것도 그곳에 그리스·로마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는 독학으로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를 탐구해갔다.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부터 시작해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신의 대리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여류문학상) ‘바다의 도시 이야기’(산토리 학예상)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 전쟁 3부작과 ‘주홍색의 베네치아’ 등 살인 3부작 등을 뽑아내며 굵직한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로마인 이야기’는 그가 필생의 작업으로 집필한 책으로 준비에만 20년, 시리즈 완간에만 15년이 걸렸다. 200자 원고지 2만1천장에 달한다. 책은 기원전 753년 전설의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때부터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천년이 넘는 역사를, 제1~5권의 ‘융성기’, 6~10권 ‘안정기’, 11~15권 ‘쇠퇴와 멸망’ 세 단계로 나눠 담아냈다. 국내에선 1995년 제1권과 2권이 동시에 첫 선을 보이면서 출판계에 인문·교양서 열풍을 일으켰다. 각 권당 10만부 이상이 팔렸고, 지금까지 2백만부 넘게 팔렸다(*한길사의 '곳간'이라 할 만한 책이다. 비록 역사의 '고전'이자 '그레이트북스'로 남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그레이트북스'를 먹여살린 책이다!).

시오노는 명쾌한 논리와 도전적인 역사 해석으로 독자들을 매혹시켜왔다. “철저한 고증과 사료에 바탕을 두었으되 역사적 기술로부터 벗어나 있고, 사료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했으되 픽션에 빠지지도 않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처럼 사료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상상’에 의존하는 그의 역사서술을 비판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또 힘(권력)과 제국주의를 깔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인터뷰에서 저자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는 점에서도 알 수 있지만, 로마(제국)과 미국(제국주의)를 구별하는 게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한국일보(06. 12. 18) 김석희 "'로마인 이야기'같은 책, 왜 우리는 아직 없을까"

“번역이 힘들면 그건 재미없는 책이에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전권을 번역해 온 김석희(54ㆍ소설가)씨는 “그와 함께 한 세월은 언제나 신났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로마인…>의 첫 독자였던 그에게, 저자와 책의 매력을 물었다. “그의 문체는 남성적인 활달함이 있어요. 로마의 도로처럼 거침없이 뻗어가는 힘과 표현의 묘(妙)가 독특한 흡입력을 발휘하지요. 알다시피 <로마사…>는 기본적으로 역사물이지만, ‘왜?’를 묻는 학문이 아니라 ‘어떻게?’를 묻고 답하는 책이잖아요. 상상력과 재해석이 필요하지요.”

‘사실(史實)+알파’의 그 ‘알파’ 속에 나나미적 글쓰기의 특징이 숨어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역사의 재해석이란 역사와 현실의 끊임없는 대화를 주선하는 과정이거든요. 로마인을 이야기하면서 시사적 관심을 유발하고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죠. 가령 이 책 1권 초판이 일본에서 출간된 1992년은 일본 경제 버블 10년이 구체화하던 시기였어요. 제대로 된 리더에 목마른 시민들 앞에 로마의 제왕들을 내세운 것이지요. <로마인…>의 흥망사 중심에는 리더십의 문제, 지도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잖아요.”

리더십은 우리 독자들이 느껴온 갈증이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 ‘세계화’라는 또 하나의 시대적 담론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구호에 <로마인…>이 호응한 측면이 있어요. 세계 경영, 포용력, 현지화 등 로마의 제국화 과정이 세계화 담론의 주요 단서들과 맞물렸던 거지요. 실제로 이 책 1~3권 번역본이 나왔던 초창기에는 일반 독자들보다는 재계 사람들과 공무원들이 많이 봤어요.”

지금 그는 “진행 중이던 작업들을 모두 매듭짓고, 마지막 권이 올 때까지 손목을 풀고 있다”고 했다. “하루 평균 원고지 100매 남짓씩 해서 18일 정도면 번역 원고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고 나면 정말 시원섭섭할 것 같다”고 했다. <로마인…>이 초대형 스테디셀러가 됐지만 그가 번 돈은 많지 않다. 인세 계약이 아니라 매절 계약(원고지 매수당 번역료를 받는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인세 계약을 하시지 그랬냐고 농담처럼 묻자 “그런 거 따지면 인생살이가 고달파진다”고, “그래도 출판사에서 섭섭치 않게 챙겨주더라”며 웃었다.

<로마인…>이 잘 나가자 일각에서는 전공 학자도, 학자도 아닌 아마추어가 쓴 책이라고 폄하하기도 했고, 일본 우익의 대동아공영권 부활 음모가 숨겨진 제국사라는 비난도 있었다. 그런 지적들에 대해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전문 학자의 역사 서술에 다른 차원이 있겠지만, 왜 우리에게는 <로마인…>과 같은 책이 없는지 반성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각광 뒤에 이 탁월하고 성실한 번역가가 있었다는 사실, 그의 문장이 있어 <로마인…>의 현지화ㆍ한국화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는 <로마인…>과 함께 한 세월이 행복했다고 말했지만, 저자 역시 그 같은 번역가를 만난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독자들도 이 두 비범한 저자와 역자를 만나 행복했다.(최윤필 기자)

06. 12. 18.

 

 

 

 

P.S.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이 대중적인 '역사 이야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내가 읽은 건 주경철 교수의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문학과지성사, 1999) 정도이다. 전15권이 완간된 만큼 총체적인 재평가와 함께 "왜 우리에게는 <로마인 이야기>와 같은 책이 없는지"에 대한 답변도 함께 제시되었으면 좋겠다. 눈에 띄는 로마사 관련서들 가운데, 국내 저자의 책은 (아동용을 제외하면) 한두 권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일차적인 건 역사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