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아들 키우는 부모님들이 말씀하시지요, "맞지 말고 때리고 와라. 치료비 물어줄게 맞지 말고 때리고 오라."고 말입니다. 요즘 그 이야기에 꼭 맞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대기업의 총수이기 이전에 세 아들을 슬하에 둔 아버지의 행동때문입니다. 내 자식 때린 놈 찾아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남자답게 사과를 받는다는 것이 그만 일이 커졌다고 하더라구요.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 분들도 다른 집 귀한 아들들인데 말입니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라는 책에 보니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교황청 경비대의 한 경비병이 궁무처장에게 질문을 합니다.
하느님은 전능하고 자비롭다는 그렇지 않다고 말입니다. 만일 신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리고 우리를 보호할 수 있으시다면, 신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왜 인간의 굶주림, 전쟁, 병이 생기냐구요, 그 분은 전능하지만 우리를 돕는 것에 관심이 없든지, 자비롭지만 힘이 없던지, 둘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궁무처정이 대답을 합니다. 그 경비병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고 가정을 하고 그 아들의 인생에 고통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네가 가진 힘으로 모든 것을 행하겠느냐고 말입니다. 아이의 고통을 막을 수 있고 간섭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아이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막아주겠냐고 묻습니다.
그 경비병은 말합니다. 고통은 성장의 일부이기 때문에 아이 뒤에 붙어서 나약하게 기르지 않겠다고요.
그 경비병의 대답을 보면 하느님이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이유를 느낄 수 있지 않나요?
하느님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의 고통만 주신다고 하지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있구요.
이 구절을 읽는 동안 생각했어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노력해야 겠다고 말입니다. 하느님의 숨은 뜻을 알았으니 말입니다. 저는 맹렬 신자는 아니지만 도에 지나친 아버지의 자식 사랑을 보면서 이 구절이 떠오르네요.
부모들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언제가 가장 적당한 때인가를요, 자식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를 해야할 때가 언제인지 판단을 잘 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