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들으시면 꾸지람을 하실만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열린 조용필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두었다가 공연장에 간 것입니다. 80년대 조용필씨가 연속적으로 히트곡을 만들어내고 부를 때 할아버지께서는 "저 것도 가수냐, 저 것도 노래냐"는 말로 조용필씨의 가는 목소리에 거부감을 나타내셨습니다. 평상시에도 KBS 1 채널만 보시는 분이니 옛말로 하면 소위 딴따라라고 불리는 조용필씨가 싫으셨을만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도 드라마를 즐겨 보고 가수 노래를 잘 불렀던 저는 조용필씨 노래도 잘 불렀지요. 그 당시 동네 친구 집에 마실을 가면 친구 어머니들이 아기 머리통만한 사과나 간식거리를 주시며 이은하씨 노래나 혜은이 씨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었고 저는 노래를 꽤 잘 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용필씨의 노래는 조용필이 좋고 싫고를 떠나 저희 세대에는 늘 들던, 자주 들을 수 밖에 없던 노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여기저기서 조용필씨 노래가 그만큼 많이 나왔으니까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싫어하셨던 조용필. 저는 왜 생전 처음으로 조용필 콘서트에 가고 싶었을까 제 스스로 질문을 해 봅니다. "창 가에 서면..."이라는 노랫말로 노래가 시작되면 "으악~"이라는 비명으로 화답을 했던 <창 밖의 여자>, <촛불>, <고추잠자리> 등등의 힛트곡을 들으러 간 것은 아닙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그 겨울의 찻집>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이 곱씹어지고 되새김질 되길래 조용필씨가 부르는 <그 겨울의 찻집>을 현장에서 득고 싶다는 생각에 비싼 돈을 들여 예매를 했고 남편에게도 쿠사리를 들어야 했지만 제 고집은 꺽이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 노래를 듣는데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그 한 구절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하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으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알기에 그랬습니다.
소설가 양인자씨가 작사한 노래로 알고 있는데요, 소설가들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인생살이를 고달픔, 남과 다른 고통도 겪어야 하는지 양인자 님도 이혼을 한 평탄하지 않은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소설가 공지영씨가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다른 세 아이의 슬하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도 공지영씨의 평탄치 않은 굴곡있는 삶이 그녀로부터 좋은 작품을 뽑아 낸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그저 평범하게 남처럼 순탄하게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일수록 남처럼 순탄하고 무난하게 인생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남들 안 하는 고생을 많이 해서 그저 하루하루 아무 일없이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 알기에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좀 더 조심하고 몸을 사리게 됩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시절이 또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겁니다.

TV에 조용필만 나오면 텔레비전을 끄시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비싼 돈 들여가며 조용필씨 공연에 갈 이유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새해가 되면 불혹의 나이가 됩니다. <창 밖의 여자>를 아무 생각없이 따라 부르던 철없는 아이가 <그 겨울의 찻집>의 노랫말의 뜻을 음미해가며 부를 수 있다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할아버지도 이해해 주실 것 같습니다.

조용필씨 노래를 좋아하지 않으니 공연장에 안 가겠다는 남편을 설득하고 협박까지 해야 하는 바람에 집에서 출발도 늦게 했고, 갑천 대교 부근에서는 콘서트 장에 가는 차들때문에 도로가 꽉 차서 첫 곡이 끝날 무렵에야 입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자리는 찾아가지도 못하고 무대 옆에 서서 2시간 동안 노래를 들었는데 제가 거기에 간 하나의 목표, < 그 겨울의 찻집>을 못 들으면 어떻하나 싶어서 공연을 보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는데 결국 제가 듣고자 했던 노래를 후반부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보다 뒤쪽에서 공연을 본 남편이 말하기를 제가 가관이었답니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빠'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하고 야광봉을 흔드는데 저는 목석같이 꼼짝도 안 하고 2시간을 서 있었다고 하더군요. 누가보면 트집잡으려고 서있는 줄 알았을 거라고 하더군요.

<창 밖의 여자> 가사 중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는 말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따라부르던 소녀가 속으로는 울지만 겉으로는 웃을 줄도 아는 불혹의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조용필 공연... 대형 가수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제는 신곡으로 힛트곡을 만들어 내기 힘든 한물 간 가수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 조용필씨를 보러 간게 아니었습니다.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시며 속으로는 울지만 겉으로는 웃는" 어찌보면 세상살이에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아줌마, 내숭떠는 아줌마가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내 속을 감추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줌마, 나보다는 가족을 먼저 챙기는 아줌마, 내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는 것만큼 남의 아이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줄 수 있는 속 깊은 아줌마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내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더 나아가지는 제 모습을 보면 할아버지도 돈 잘 쓰고 왔다고 칭찬해 주시지 않을까요?


이상 부족한 제 공연관람기였습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P.S.: 몇 번은 더 수정을 해야 제 마음에 드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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