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시립 미술관에서 루오전이 열린 지는 꽤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 저런 일로 바쁘다보니 아이들과 함께 미술관까지 갈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낼 수 없었는데 방학이 끝나가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움직이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루오전에 가게 되었다.
솔직히 미술 작품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취향과도 상관이 있는 것이라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면 그리 큰 관심을 갖게 되는 분야가 아니라 루오전에 가기 전에는 루오라는 작가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했다. 똑같은 배우를 봐도 예쁘다, 멋지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다,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사실, 루오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나 미술 세계를 알고자 간 것보다는 아이들 숙제거리를 하나 더 마련해준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루오전에 가보니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에 마련된 안내 자료는 전시되어 있는 루오의 많은 작품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정도였지 그리 크게 읽을 거리를 제공해주지 못했는데 작품마다 설명이 되어 있는 해설이 마음과 눈에 쏙 들어 왔다. 학생들이 미술관 탐방기를 쓰려고 하자면 미술관에 비치된 자료나 인터넷 검색으로 찾는 자료보다 미술관측에서 마련해 놓은 작품 해설을 손으로 옮겨 쓰는 노력이 꼭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르주 루오는 말년의 사진으로 봐서도 그리 불행한 삶을 산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꽤 깔끔하고 단정하게 나이를 먹은 노인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니 루오는 고호같은 화가에 비하면 행복했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루오는 사람 농사도 잘 지었는지 당대의 유명한 문호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서 여러모로 행복한 사람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루오가 추구한 작품 세계가 소외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었고, 루오의 작품들 중 <잘난체하는 사람>이나 <거만한 여인>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 루오가 잘난 사람, 잘난 척 하는 사람, 지배 계층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루오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창녀나 곡예사였다. 루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못 가진 자, 못 배운 자, 무시당하는 자들이 주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루오는 그런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그들을 기괴한 형상으로 표현해 세상의 어두운 사회악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루오가 그들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들을 작품 소재로 삼지 않았을테니 루오는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라는 말에 부합하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루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루오가 그려내는 인간의 고귀함은 "고통 한 가운데서 그 고통을 감내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고, 그러한 고귀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하니 루오가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 연민을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예술가였다는 것을 그의 그림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말했다고 한다.
"나는 세계적인 이야기꾼이다. 나는 사람들의 인간적 성숙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라고 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개인의 꿈을 이룬 것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
"보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될 만큼 감동적인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했다는 루오.
그런 루오가 만들어낸 예수님의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은 많은 감동을 느낄 테이니 각자 개인의 작은 꿈과 노력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숭고하면 목이 덜 뻣뻣하다'는 루오의 작품 제목을 아마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갈 것 같다. 루오는 그림뿐만 아니라 짧은 그림 제목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주려고 했으니 仙을 아는 작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루오. 말년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특히 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루오의 말년도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