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이나 있기에 일년에 서너 번은 녹색 어머니 봉사를 하게 됩니다.
저는 유난히 비 오는 날 당번이 자주 걸리는데요, 어찌 보면 비 오는 날 봉사를 하게 된 것을 더 기뻐합니다.

녹색 어머니 봉사를 하는 날은 제 아이들 밥상 차려 놓고, 아이 머리 일찍 빗겨 놓고 집을 나섭니다. 녹색 어머니 앞치마, 미스코리아 띠, 깃발, 모자, 비옷까지 살림살이가 가득 담겨 있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섭니다.

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문이 3개가 있기에 세 분의 어머니들이 봉사를 하십니다.
혹시 내가 봉사하는 날 아이들이 사고 나면 어쩌나 싶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아이들 챙기고 손짓 해가며 길을 건너주다보면 성질 날 때가 있습니다.

우선 쉴새없이 밀려드는 학원차때문에 성질 나구요, 학교 앞인데 주정차 금지인데도 차를 대고 물건을 나르는 분들을 보면 짜증나구요, 내 자식만 안전하게 교문 앞으로 밀어 넣으려고 차를 몰고 오는 부모님들을 보면 눈물납니다.

요즘은 어머님들도 차를 가지고 다니시기 때문에 자신의 차를 이용해서 아이들의 등하교를 시켜주는 어머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나쁘다는 것 아닙니다. 능력있지요.
그러나 내 자식만 안전하게 학교 교문 안에 밀어 넣겠다고 좁은 학교 앞 골목길까지 차를 끌고 오고 교문쪽으로 차를 대고 아이를 내려 놓는 부모님들을 보며 화가 납니다.
아이들을 데려다 줄 수 있는 차가 있고 시간이 있는 어머님들은 행복한 어머님들이고, 그 분들의 자제분들은 축복받은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아침 출근 시간에 쫓겨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나가는 어머님들, 그리고 그 분들의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해도 되는 걸까요?

가을 추수철에 시골에 가면 콤바인이라고 부르는 탈곡기를 이용해서 벼를 거둬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콤바인을 운전하는 분, 쌀자루를 계속 번갈아 대가며 털어낸 벼를 담는 분, 2인 1조가 되어 작업을 합니다. 벼가 그 자리에서 베어져 자루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희한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어쩜 저렇게 벼 한 톨, 흘리지 않고 쏙쏙 담아내는지 신기하지요.

자기 자식들 행여나 사고 날까봐 차문을 교문 쪽으로 대고 아이를 내리게 하는 어머님들을 보면 탈곡기 속으로 들어가는 벼가 생각납니다.
자신의 아이들은 교문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서 좋겠지만 그 어머님들이 차를 돌리느라 애먹을 때 이쪽 저쪽에서 오는 아이들은 누가 보호합니까?

녹색 어머니 자원 봉사자들이 있지만 위험해서 '앗' 소리를 지를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닌데 그 많은 아이들이 어떻게 다 안전하게 학교 안으로 넣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오거나 말거나 차를 돌리려고 운전에 열중하는 어머님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내가 안 보는 날에는 내 아이들도 저런 대접을 받겠거니 싶어서 말입니다.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교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내려주어 아이가 학교 교문까지는 걸어가며 친구들과 인사라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요즘 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도보에 펜스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안전하니 말입니다.

오늘 아침, 고마운 분도 있었습니다.
분뇨 수거차를 운전하시는 아저씨였습니다. 학교 교문 앞에 차를 세우고는 움직이질 않으셔서 째려보고 있었는데, 저와 눈이 마주치자, "앞 차가 빠져 나가면 금방 갈께요. 미안합니다."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찌나 고맙고 죄송하던지...
커다란 분뇨차를 못 빠져나가게 한 차는 방금 전에 한 아이를 교문 앞으로 쏙 밀어 넣고 간 어느 어머님이 혼자 타신 차였습니다.

제발 말로만 아이들 안전, 아이들 건강 생각하지 말고요. 내 자식 귀한 것처럼 남의 자식도 귀하다고 생각하고, 서로 한 발씩만 양보하면 어떨까요?
내 자식 운동화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고 싶은게 부모 마음이지만 빗물 고인 웅덩이에 발을 첨벙첨벙 담그며 좋아하는 아이들 모습도 볼만하지 않나요?
신발 빨고 양발 빨 일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어른 되면 그런 놀이도 못하잖아요...

제발, 부모님의 관심을 사랑을 조금 덜 받고 있는 아이들도 생각해주는 어른이 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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