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남이 아들을 차량으로 치어 숨지게 한 사실을 알고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유기 치사)로 구속영장을 받은 젊은 여인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 여인은  집 근처 길가에서  함께 외출하고 돌아온 내연남 이씨가 자신의 산타페 차량 뒷바퀴에 아들 김군(4)이 치어 숨지게하자 남편에게 ‘아들이 사고가 난 것 같다’는 말만 하고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혐의라고 한다. 어머니 김씨는 이씨와 불륜사실이 들통날 것을 우려, 아들의 사고 경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꺼려 왔으나 사고를 낸 내연남 이씨가 경찰에 자수를 하는 바람에 이 사건이 들통나게 되었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채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나선 남편은 길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했으나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기는 중에 숨졌다고 한다. 내연남은 아이가 차에 치인 것 같다고 말을 했는데 오히려 애 어미가 그냥 가자고 했다고 하니 제정신인가 싶기도 하다.
내연남의 차를 타고 가고 남편에게 전화 연락만 한 뒤 연락을 끊은 아내.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찾아나선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답답하고, 엄마를 쫓아가려다 차에 치인 4살 먹은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아이구, 아이구, 세상에 이럴 수가 있냐..."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저승 사자도 감동시킨다는 어미의 정성과 사랑인데 자신의 쾌락을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고 눈 앞에서 죽은 자식을 두고 떠난 몰인정한 인면수심의 어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에는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 군인들은 우리나라 여자들을 잡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장독대나 짚단 속에 숨어 있는 어미를 스스로 나오게 하기 위해 자식을 인질로 잡고 그 어미를 나오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어미는 자식의 고통과 아픔, 슬픔을 내 것 못지않게 여긴다는 것인데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면서 이런 사람같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입이 쓰다.

나의 어머니도 세 살 먹은 나와 두 살 먹은 내 동생을 버리고 집을 나갔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겠다는 것과 시어머니와의 갈등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대로 잘 컸지만 내 동생은 선천적으로 심장판막증이 있던 아기라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얼마 뒤 죽고 말았다. 내 어머니가 좀 더 참고 슬기롭게 시집살이와 결혼 생활을 했더라면 나의 동생도 수술을 받아 건강하게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어미의 사랑과 힘은 가히 크다 할 만 하다. 이혼을 하고나니 막상 아이들이 걱정되었는지 나의 할머니를 찾아와 다시 살겠다고 빌었으나 내 할머니가 그를 받아들일 리 없었고 사정하다 지친 나의 외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엄마를 데리고 갔다 하니, 가끔은 그리 차갑고 쌀쌀맞은 것도 집안 내력은 아닌가 싶기도 해서 나의 행동과 말투를 반성하기도 한다. 나도 결혼 초기에는 시집살이가 힘들고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러워 이혼을 생각해 본 적도 있으나 어미의 결혼운이 딸아이에게 대물림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외할머니, 친정 어머니 대까지 내려온 불행한 결혼운이 내 자식에게까지 미치는 것이 두려워 이를 악물고 참고 살았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내 자식이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어렵고 힘든 일도 참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내 스스로 나에게 상을 주고 싶을 정도로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건강하게 착실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내 희생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중에 원숭이 어미의 창자가 끊어진 이야기가 있다.
중국 중국 진나라의 환온이라는 사람이 촉나라로 가던 도중 삼협 땅을 지날 때의 일이라고 한다. 환온을 따르는 하인이 근처 숲에 들어갔다가 어린 원숭이 한 마리를 붙잡아 가지고 배로 돌아 왔다. 그런데 어미 원숭이가 뒤를 따라오며 물을 사이에 두고 강가에서 슬프게 울고 있었다. 어미 원숭이는 강기슭을 따라 배를 계속 쫓아오면서 어린 원숭이를 보고 울부짖었다. 이윽고 백리도 더 가서 배가 강기슭에 닿자 어미 원숭이는 배로 뛰어들었으나 끝내 그대로 죽고 말았다. 사람들이 궁금하여 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도 슬퍼했던 나머지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토막 잘라져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창자(腸)가 끊어지는(斷)듯한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단장(斷腸)이라고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식의 아픔을 대신해줄수 있다면 목숨까지 내 놓겠다는 부모들, 가시고기 이야기 속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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