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랫만에 오전에 시장에 갔습니다. 동사무소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내친 걸음에 시장까지 가게 되었죠. 평상시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는데 간만에 혼자 걸어가니 한적하기도 하고 마음은 가볍더군요.
시장에는 아직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길가에서 귤을 싸게 파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큼직한 귤도 한 바구니에 이천원, 작은 귤도 한 바구니에 이천원이더군요. 귤을 무척 좋아해서 앉은 자리에서 반 박스도 먹어 치우는 딸아이 생각에 두 바구니를 샀습니다. 세 바구니를 사면 오천원이라고 하길래 두말 않고 샀더니 덤도 주더군요. 추석이 지나고 나면 과일값이 좀 내려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며칠 전 가격과 너무 차이가 나서 귤 가판 사장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며칠 사이에 귤이 왜 이렇게 싸졌어요?" 하고 말입니다.
귤 가판 사장님은 "지금 날이 너무 뜨거워서 제주도에서는 귤이 나무에서 말라 비틀어지고 있대요. 어쩌다 싸게 잡은 물건이 있어서 싸게 파는 거예요."라고 말입니다.

요즘 가을 가뭄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날씨가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싸게 사먹는 것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귤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에는 귤 값이 꽤 저렴했습니다. 근데 막상 귤을 많이 먹는 겨울이 되자 귤값이 꽤 비쌌던 생각이 났습니다. 귤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풍족하게 먹일 수 없을만큼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장사하시는 분께 여쭈어보니 "올해 귤이 너무 풍작이라 제주도에서 땅을 파고 귤을 다 묻어 버렸다. 그래서 비싸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귤값이 너무 싸지니까 아까운 귤을 땅 속에 도로 파 묻어 버렸다는 말에 애타는 농부들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서민들도 풍작일 때 실컷 맛있는 귤 좀 먹게 해주지 그렇다고 그 예쁜 귤을 땅 속에 묻어 버리나 싶어서 아까운 생각이 들고 귤 농사를 짓는 분들이 미웠습니다.

옛날에는 귤나무 한 그루면 자식들 대학도 보낸다고해서 대학나무라고 했고, 더 예전에는 너무 맛이 좋아 서울 양반들의 수탈에 사람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던 귤나무였다고 합니다. 제주도 분들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소득을 주는 중요한 자원이니까 귤 값을 조절하기 위해 풍작이 든 귤을 폐기 처분하기도 하겠지요. 게다가 이제는 오렌지나 망고같은 서양 과일들에 밀리기도 하겠구요. 또한 몇 년 전부터는 기후조차 귤농사 짓는 분들을 힘들게 해서 하우스 시설이 없이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농사가 되어버렸고. 언제부턴가 얄미운 상술이 소위 비가림귤이라는 희안한 이름으로 하우스 귤을 대접해서 노지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 귤이 제 값을 못 받는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무슨 일이든지 순리를 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식량이 남으면 공급초과로 세계 곡물가격이 떨어지고 다국적 식량회사의 이윤이 하락되기에 초과생산된 식량을 바다에 버리는 야만적 행위는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닐까요? 겉으로는 국제 기구를 통해 굶주림에 우는 지구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거대 기업의 자본은 인륜과 천륜을 거스르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뭐가 옳고 그른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풍작이 들어 가격이 하락한 배추나 벼, 보리를 태워버리고 눈물 흘리는 농부들의 심정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니 풍년이 들었을 때 어려운 사람들도 헤택을 받아볼 수 있게 한다면 또 다른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나비 효과라는 말, 긍정적인 면으로 생각해보면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아닐까요?

소설가 김주영님의 아리랑 난장에 보면 좋은 구절이 있습니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오히려 넉넉한 인심이 신선해 보이고 야박한 사람들 틈에서 피어나는 인정은 더욱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이에는 이고 눈에는 눈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즐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운 표정의 사람 앞에는 언제나 즐거운 사람이 나타나고 속임수를 가진 사람 앞에는 언제나 허위의 그림자만 나타난다. 비밀을 가진 사람 앞에는 백주대로에서도 반드시 의심의 자락이 덮이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자에게는 불행이 비켜간다."입니다.

어제는 장을 다 보기도 전에 귤을 많이 사는 바람에 시장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가 없더라구요. 그런데요, 팔은 아팠지만 두 가지 생각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처럼 큰 봉지로 하나 가득 귤을 사들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좋았구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귤을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저의 딸아이, 한가득 있는 귤을 보더니,
"이제 나의 계절이 온 건가?"라며 귤을 먹기 시작하는데 팔 아픈 것이 순식간에 없어지더라구요.
많은 아이들이 귤을 많이 먹고 귤의 달콤함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행복한 겨울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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