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아쉬었다. 밍밍과 옥희의 사랑을 기대했기 때문이었을까? 책의 뒷부분에 이호백님이 쓰신 '길벗어린이 작가 앨범'의 의미를 알려주는 글이 나온다. 맞다, 요즘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덕분에 옛날같으면 단편집에 들어갔어야 할 작품들이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책이 가지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상상할 기회를 뺏는다는 것 말이다. 옥희가 얼마나 예뻤을지, 중국 소녀들의 옷 모양이나 발 모양은 어떨지? 밍밍은 잘 생겼을지? 이런 것들을 상상하고 읽은 후 TV나 생활 속에서 중국 옷이나 풍습을 보며 연결을 시켜보아야 하는데 그런 기회는 빼앗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전족하면 펄 벅의 대지에 나오는 오란의 발을 기억하고 있다. 많은 소설 속의 주인공들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오란은 전족을 하지 않아 크고 미운 발을 갖고 있다. 그 발때문에 남편의 사랑을 더 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뼈대가 크고 체격이 좋은 여성을 볼 때나 발이 큰 여성을 볼 때면 오란의 발이 이랬을까? 오란의 외모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혼자 상상을 해본다. 이 책에서는 옥희가 주인집 쌍둥이 소녀들보다 예쁘다고 했는데 내가 볼 때 그리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눈으로 보여 주는 것도 좋지만,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다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