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10
최명희 지음 / 한길사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1년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독서노트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올해 읽은 책들중 가장 기억에 남고, 읽어서 보람이 있던 책은 '혼불'이었습니다. 연작으로 된 책들은 읽다 보면 술술 넘어가는 부분도 있고, 읽어도 읽어도 눈에 안 들어와서 읽기가 오래 걸리는 부분도 있어서 10권을 다 읽는데 20일 이상 소요되었지만, 너무 좋은 책을 읽어서 기뻤고, 작가의 박식함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번역가가 정확하고 아름다운 말로 표현한다고 해도 신랑, 신부 초야 치루는 이야기며, 흰 죽을 맛있게 끓이는 법을 어떻게 그 느낌 그대로, 그 맛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대학교 도서관에서 대출이 잘 되는 책은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소설이라고 하던데, 우리의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특히, 대학 입학을 앞두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학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엄청 박식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혼불 10권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는다면

'사람들은 나라가 망했다, 망했다 하지만, 내가 망하지 않는 한 결코 나라는 망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비유하자면 나라와 백성의 관계는 콩꼬투리와 콩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콩껍질이 말라서 비틀어져 시든다 해도, 그 속에 든 콩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 터 무수한 열매를 조롱조롱 콩밭 가득 맺게 하나니...' 라는 부분입니다.

일제 점령기에도, 6.25 후의 폐허 속에서도, IMF 위기에서도 굳건히 버틴 우리 민족의 끈기를 말하는 것 같아서 매우 아름답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10대에 읽었던 토지와 20대에 읽었던 태백산맥을 30대에 다시 읽으니 한 구절 한 구절 새록새록 새 맛을 느끼며 기쁘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40세가 될 때 쯤, 혼불을 다시 한 번 읽고 싶습니다. 작가께서 오래 생존하셔서 10권 이후를 완성하셨다면 강실이의 미래나 효원의 굳센 모습을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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