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린이를 위한 평생 감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 표지를 넘기고 책날개에 씌여 있는 작가 소개를 읽는데 순간 헷갈렸습니다.

지은이 전광 님은 우리나라 분인데 왜 임금선이라는 번역가의 이름도 올라와 있는지 순간 이해가 되질 않았지요. 책표지만 넘긴 상태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전광님이 <평생감사>라는 책을 쓰셨고, 임금선이라는 번역가가 그 책의 어린이판을 편집한 것이지요.

참, 어린이 사랑이 대단한 대한민국 출판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를 위한 시크릿>에 대한 광고를 본 중학생 딸아이가,

"이 책도 어린이용이 나왔네. 사 줘."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아이들에게 많은 책을 읽는 것도 좋고, 아이들이 읽기 힘들어하고 지루해할까봐 어린이용으로 재편집해서 글도 쉽게 쓰고, 그림도 많이 그려 놓은 책들을 보여주는 것도 좋습니다.

근데, 아이들이 지금부터 처세에 관한 책, 성공에 관한 책, 포기하지 않는 인생에 관한 책,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는 책을 읽어야 하나요?

<어린이를 위한 배려>, <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 <어린이를 위한 시크릿> 등등 베스트셀러를 어린이용으로 만들어 놓은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이들이 기존에 나와 있던 성인을 상대로 씌여진 책을 읽다가 포기하면 안 되나요? 읽다가 접어 두었다가 한참 뒤에 다시 생각이 나서 펼쳐 보면 안 되나요?

지금부터 미리미리 다 읽어두고, 포기하지 않고 인생살기, 처세를 잘해서 살아남는 법, 공부 밖에 남는 건 없으니 애초에 딴 생각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기등등을 머리 속에 각인시키며 살아야 하나요?

시행착오가 좀 있더라도 본인들이 스스로 겪고 깨우치면 안 되나요?

도서관의 고마움, 독서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말 중에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수원 도서관 2층 올라가는 벽에도 붙어 있습니다.

빌 게이츠가 말했다지요?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마을 도서관이다."라구요. 근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잊고 있지요?

빌 게이츠는 성공하려고 책을 읽은 게 아닙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논술을 잘 할 수 있고, 논술 점수를 잘 받아야 하버드 대학에 갈 수 있고, 하버드 대학을 나와야 큰 회사 사장이 되어서 돈을 맘대로 쓸 수 있는 것을 알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책은 빌 게이츠 인생에 한 과정이었을 뿐 그게 목적이나 수단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며칠 전,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를 읽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읽고는 잊고 잇었는데 딸아이 덕분에 읽게 되었습니다.

어린 철부지 시절에는 아들을 떠나보내기 위해 죽은 척 하는 독 짓는 늙은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비럭질을 하러 다니게 될까봐 젊은 조수하고 야반도주를 한 독 짓는 늙은이의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식을 버린 나쁜 엄마이지만 자기 미래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그랬으려니 하는 생각에 딱한 마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도망가는 길을 택했을 것입니다.

책은, 좋은 글은 이런 것 입니다. 젊었을 때 읽었던 감동과, 나이 들어서 읽을 때의 감동이 다른 것, 해석이 달라지는 것 말입니다.

제발 대한민국 출판계가 어린이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종이 낭비, 인력 낭비하지 말고 적당히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도 빌 게이츠가 미래를 보는 예지안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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