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아무 일 없는 듯,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먼지를 밖으로 쓸어내지는 못해도 방구석에 밀어놓다 보면 흘러가는 시간이 종이를 겹겹이 붙여 만든 연극 소품 같은 '가정' 정도는 만들어 준다.
하지만 가족관게란 몹시 신경질적인 것이다. 무신경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일수록 실은 신경이 필요하다. 금이 간 거실 벽, 가령 이미 눈에 익어버려서 그것을 웃음거리로 바꿀 수 있다 해도 거기서 확실하게 바람은 들이닥친다. 웃고 있어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루 빨리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금간 곳을 메우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금간 곳을 부끄럽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뭔가 역할을 가진,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 아내나 남편을 가진 나. 남자로서의 나. 여자로서의 나. 모든 것에 자각이 필요하다.-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