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지희(斑衣之戱)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논다는 뜻으로,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에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님을 봉양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고 하네요. 그의 나이 70의 백발 노인이 되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정성껏 보살피는 아들의 효성 때문인지 그때까지 정정하게 살아 계셨답니다.

노래자는 항상 어린 아이들처럼 알록달록한 문양이 있는 옷을 입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떨었답니다. 그의 재롱에 부모님들 역시 자신들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노래자 역시 나이 많은 부모님 앞에서는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았구요. 그리고 부모님께 올리는 식사는 손수 갖다 드렸으며, 식사를 마칠 때까지 마루에서 엎드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갓난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흉내낸 것이라고 하니 요즘 사람들은 흉내내기도 어려운 지극한 효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스코틀랜드의 작가 제임스 배리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제임스 배리는 10남매 중 7번째 아이였다고 합니다. 유년기의 그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는데 여섯 살 때에 그의 생애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양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열세 살 난 형 데이빗이 스케이트 사고로 사망했던 일입니다. 집안의 희망이자 가장 기대했던 아들을 잃은 슬픔에 어머니는 몸져눕고 말았답니다. 어두컴컴한 방의 병상에 누워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어머니는 제임스를 볼 때마다 데이빗으로 착각해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뛰어난 형의 그늘에 가려서 이제껏 부모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어린 제임스는 뒤늦게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제임스는 자기도 모르게 죽은 데이빗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데이빗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키도 그대로이고 나이를 먹지 않으면서 조금도 어른을 실망시키지 않는 완벽한 어린이였다고 합니다. 이 강렬한 경험은 제임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위해 '자라고 싶지 않았던' 제임스의 키는 150cm 정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키도 작고 어린이의 정서를 가진 배리는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으로 진출하여 극작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취미는 큰 개를 끌고 켄싱턴 공원에 나가 아이들과 노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배리는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나온 가족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같이 이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합니다. '피터팬, 자라지 않는 아이'의 여러 캐릭터들과 줄거리는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라고 합니다. 주인공 피터팬의 피터는 아이들의 성에서, 팬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신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피터팬이 처음 연극으로 공연되었을 때, 배우가 커다란 개를 연기하고 꼬마 주인공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감각의 이 연극은 미국과 영국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네요.

노래자와 제임스 배리. 살았던 환경과 살던 시대도 다른 동.서양의 사람들이지만 부모를 위한 마음,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했던 마음은 요즘 사람들에게도 공감이 되는 이야기 아닐까요?
나는 노래자같이 부모에게 효도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내 자식은 노래자처럼 나에게 효도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 다른 형제들보다 특히 나만 더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 모두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효자의 대표 주자로 사람들에게 명성이 높은 노래자도 그렇구요,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죽은 형처럼 보이도록 행동했던 그러나 그것이 본인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되었을 제임스는 배리는 피턴 팬의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노래자같은 효자도 아니고 제임스 배리처럼 어머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기름 보일러를 때면 기름값 아끼시느라 고생하시던 어머님이 자식들이 돈을 추렴해 놓아드린 연탄 보일러때문에 기분이 좋으시고, 안부 전화를 할 때면 "방이 뜨뜻해서 사지가 노골노골하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살아 생전에 좀 더 잘해드려야 겠다는 생각만 굴뚝같이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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