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9년 11월
구판절판


나중에라도 프랑스를 여행하실 분은 파리에서 샤르트르를 거쳐 대서양 연안의 그랑빌 쪽으로 가는 도로를 달려가면 되겠다. 언제라도 다시 프랑스에 간다면 북부 노르망디 해변의 에트르다(Etretat)와 함께 다시 한 번 꼭 가고 싶은 곳으로 내게는 기억되는 길이었다. -38쪽

미국의 골프선수 할 서튼..미국 남부 석유재벌집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서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전 미국의 골프대회를 휩쓸고 난 후 10년간 세 번의 이혼을 하고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가 재기한 그는 말한 적이 있다 "인생에서 제가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기 전에 우리는 서른다섯 살을 넘어버린다는 겁니다.처음에 나는 빠른 차가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포르셰를 샀죠. 그 다음엔 집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샀죠. 그런데 그 다음에 비행기가 한 대 있으면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한 대 샀지요. 그러고 난 다음에 깨달은 것입니다. 행복은 결코 돈을 주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쪽

카뮈가 그렇게 말했다. 내가 만일 내 인생의 전환기를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얻은 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잃은 그 무엇 때문이라고..... 지난 세월 동안 나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루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잃었고, 누군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를 잃었다. 그러니 이제 또 무엇을 잃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지, 새벽이 올 때가지 그렇게 혼자 뒤척이며 나는 깨어 있었다. -225쪽

내 생이 내 것이 아니듯, 내 뭄이 내 말을 듣지 않듯, 내 혀가 마음과는 다른 말만 골라 하듯, 마음대로 되는 건 없는데, 그중 제일 말을 듣지 않는 이 마음이라는 것이 제멋대로 과거로 거슬러오르기 시작했다.
회개라는 성서상의 용어는 원래 히브리어로 '거슬러올라가다' '물살을 거슬러올라가다' '악한 것에 대항하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데 폴요한 조건을 설정하다' 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안 건 최근이었다. ...그러니 그 밤 나는 회개를 하고 있었던가.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과거로 올라가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나의 어리석음이 펼쳤던 내 인생의 드라마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다시 바라보는 형벌을 받았다. 이제 순종이라는 말의 아름다운 의미를 알 만한 나이가 된 나는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아멘 -224쪽

내 생이 결코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 인생은 나의 것이어야 한다는 이 딜레마. 우리 삶에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바로 그 순간에도 나는 또한 남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고 있는 딜레마...... -224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왜 아이를 낳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듯, 그렇게 알 것 같았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창조물을 그리운 것들과 나누고 싶었나보다. 좋은 걸 보면 생각나는 게 사랑이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을 만든 신을 거부해도 좋을 무서운 자유, 그 신성의 일부까지 부여하셨나보다. 사랑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하느님은 나를 기다려주신 것이다. 18년 동안 물끄러미 바라만 보면서, 당신이 가진 전지전능의 능력을 오직 기다리는 데 사용하신 것이다....... 뭐하러 사람을 지으셨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나 자신을 미워하며 오래도록 헤매어다니던 한 사춘기 소녀의 영혼에게 하느님은 이제야 대답을 주신다. 이렇게 오래도록 헤매어다닌 후에야. -283쪽

그리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 신께서 나를 위해 날을 개게 해주시고 바람을 잠자게 해주시며 결국 이 모든 하늘과 땅, 우주만물을 지어주셨음을, 나 공지영이 아니라 당신이 지으신 '모든 나'를 위해서...... 나는 하느님이 왜 천지를 창조하시고 동물까지도 창조하시고 당신 스스로 "하느님 모기에 참 좋으셨다"해놓고 이 골칫덩어리 인간을 만들었는지, 어렵풋하게 알 것 같았다. -283쪽

장 루슬로의 시
다친 달팽이를 ㄹ보게 되거든 도우려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280쪽

처음 아르장탕 관상수도원을 나와 거리를 떠돌면서 나는 희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수도원은 꼭 수도원 건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수도원에 그토록 가고 싶어 수도원만 찾아다니는 기행을 하면서 수도원과 기행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그냥 내 삶의 어느 날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