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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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인간들은 예깜 같은 거 가질 수 있는데, 그런 예깜 같은 것이 적중한 일, 말하자면 인생이 책이라면 그 페이지를 넘겨주는 손길 같은 일...... 그런 일들이 내게 일어났네.-68쪽

자네가 이니셜로 J라고 표기했지만 그게 누군지 나로서는 대충 짐작이 가네. 이제야 고백이랄 것도 없는 고백을 하자면 그녀를 나 역시 한 때는 설레는 눈으로 바라본 일이 있었네. 그녀는 우리 모두의 말하져면, 여주인공 같은 사람이 아니었겠나. -69쪽

나는 고립된 무인도처럼 외로운 광주시민들에게 신문을 가져다주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네. 그것을 받아들고 우리는 외롭지 않다고 기뻐하던 광주시민들의 얼굴도 떠올렸네. 진정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는 것은 아마도 외롭지 않다는 사실, 외롭다고 느낀다면, 고립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죽음을 이마에 대고 있는 것...... 그때 힌츠페터씨에게 신문을 받아든 사람들, 아마 그들 중 더러는 죽고 더러는 이 땅을 떠나갔겠지만 그렇게 그는 다시 그 답장을 그들로부터 받은 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 -92쪽

지난번 아우슈비츠에 갔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네만 선한 것들, 진실들, 정의들은 이상하게 아주 작아. 아우슈비츠는 크고, 그것을 묘사한다는 것은 "대서양을 한방울도 남김없이 마시는 것처럼, 지구를 포옹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네. 폭력은 수용소처럼 거대하고 때로는 범국가적이지만, 사람을 살리게 하는 것들은 웃음들, 편지들, 따듯한 말들, 혹은 한통의 필름들, 하나의 작은 마음들, 진실을 향한 결단들 혹은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따스한 음성들..... 선한 일은 맨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네. -93쪽

다음에 한국에 나가면 우리 작은 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하세. 어쩌면 잊혀진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까. J에게 짧은 편지 한통 띄우려하네. 그냥 잘 있느냐고 물어보려고 하네. 나도 잘 있다고, 너를 잊지 않고 있다고, 우리들의 깃발과 함성과 노래처럼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다음 챕터로 넘어갈 뿐이라고. 사랑하는 친구 소식 바라네.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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