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Classics in Love (푸른나무) 6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희동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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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락방에 혼자 쳐박혀 읽던 세로줄의 책 중에 '사강' 전집이 있었다. 10권 남짓 되던 흰 표지의 사강 전집은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노랗게 변색된 세로 줄의 하드카버 전집은 나와 세상의 유일한 통로였다. 세익스피어 전집과 함께 지겹도록 읽어댔으니 말이다. 사강 전집 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이었다. 그때는 그 소설이 사강이 19살 때 쓴 처녀작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랬어도 시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세실의 시선은 내 마음을 휘어잡았다. 당시에 열심히 읽었던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테스'등과 함께...여성의 삶, 시선, 심리에 심취해있을 무렵이었다. 아이도 여자도 아닌 소녀의 시기. 세실과 나는 그런 시기를 살고 있었다.

세실이 주인공이면서 관찰자라는 점이 이 소설의 묘미를 더해준다. 자신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자신의 심리가 드러나는 것이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의 진희처럼 세실 또한 제 속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한 개인의 외양, 내면, 가치관까지 혼자서 관찰한다. 그리고는 모든 사람들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부분도 '새의 선물'의 진희와 비슷하다. 세실은 자신이 만든 각본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도, 엘자도, 시릴르도 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깨달음은 세실을 소녀에서 여자로 성숙하게 한다. 안느라는 성숙한 여성의 죽음을 바탕으로 해서 말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세실에게는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성숙한 여성의 모델이 없었던 것 같다. 또 아버지 주변의 여성들은 성숙한 여성의 모델이 되기에는 너무나 촌스럽고 쾌락적인 성향이 강했다. 아름다운 몸을 가졌지만, 정신적인 면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던 아버지의 연인, 엘자처럼 말이다. 세실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처럼, 안느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거부한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며, 아버지의 세계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버지의 세계란 무의미한 환락...또는 일시적인 욕망을 보여준다. 바로 이런 1차적인 욕구에서 벗어나 성숙하기 위해서는 탈피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번데기의 허물을 벗고 나비로 날아가는 성숙의 시기...'슬픔이여 안녕'은 그런 성장기를 보여준다. 특히 섬세한 감수성으로 여성의 성장을 다루는 것이 장점이다.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갈매기 조나단'등등...남성적인 입장에서 성장기를 다룬 소설은 많지만, 여성적인 관점에서 성장을 다룬 내용은 드물지 않은가 싶다. 그래서인지...아직도 이 소설의 구절들과, 인물, 풍경의 이미지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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