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시네마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1996년 97년 한창 일본 소설이 붐을 이루었다. 유미리라는 재일동포가 쓴 '가족시네마'가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해서 이슈가 되었다. 그 이후에 유미리의 거의 모든 작품은 '가족'이라는 큰 주제가 뒷받침 된 것이었다. 그녀의 유명세가 너무 커서, 이 작품이 유행할 당시에는 한 수 접어 놓고 있다가 그 열기가 사그라든지 한참 후에야 책을 펼쳤다. 소설적인 문체라기 보다는 희곡의 문체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단절되어 있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인 듯 하다. 주제가 가족의 단절이듯, 주인공이 서술하는 한 문장 문장 간의 간격이 크고, 인물들 간의 거리도 매우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가족이란 어느 집이나 다 연극이잖아'라는 말은 어쩌면 풍요롭다고 여겨지는 90년대의 환상을 깨는 망치같은 말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알게된 가난처럼 낯설고 불편한 느낌처럼 말이다. 특히 한 핏줄이라는 끊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던 관계의 틀이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어색함이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뒤집어 놓고 생각하면 이 소설은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유미리라는 작가가 살았던 일본의 당대의 사회상, 그리고 우리 나라에도 곧 부각될지도 모르는 위험스런 사회상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실상 90년대엔 근친 살해에 대한 위협이 현실화 된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다든지 그 반대의 경우라든지 말이다. 점점 핵가족화 되어 가는 사회를 미리 예방하지 못한 노인정책의 부재가 표면화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하나의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긍정적인 결말을 가져오지는 못한 것 같다. 결국 유미리라는 작가의 개인적인 삶을 생각해 봐도, 유부남과의 사랑 때문에 미혼모가 되지 않았는가? 사람이 태어나서 필연적으로 맺게 되는 최초의 관계가 가족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작가가 바라본 현실은 매우 기괴하다. 가족들은 타인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한 명은 가족과 자신이 정말 별개의 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경우에 그 사람은 가족간의 관계를 부정하면서도 그 이면으로는 자신이 새로 이루게 될 가정에 대해서 막연한 동경을 가진다. 어쩌면 이 작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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