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진다는 것 창비시선 205
나희덕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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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나온 이 시집에 나온 시인의 사진을 살펴보면, 1991년에 나온 첫시집 '뿌리에게'에 나온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선한 시인의 눈매와 치아를 약간 드러낸 수줍은 웃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91년에는 약간의 장난기가 감도는 웃음이고 2001년의 시인은 좀더 작고 서투른 웃음이지만 그 따뜻함은 그대로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람의 겉모습이 조금 바뀌는 동안 시는 많이 바뀌었다.

[어두워진다는 것]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거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시 전문-

이 시집은 매우 고요하다. 뭉근히 끓고 있는 곰국처럼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첫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이제 차분히 제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위 시에서 단 1분 사이에 변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 1분은 그저 쉽게 쉽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으리라. 찰나의 시간을 순간 정지시켜 놓은 시인은 그 속에서 어둠을 본다.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시인은 조금 멈춰진 공간에서 쉬고 있는 듯 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쌓여왔던 피로를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으며 삭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른스러움이 이 시집의 매력인 듯 하다. 혈기 왕성하여 아이들을 한소끔 아름답게 키워냈을 때도 아름다웠지만, 그 지친 팔다리를 잠시 쉬어가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모습도 아름답다. 66년생인 시인은 이제 30대의 중반을 넘었다. 한고비를 넘겼달까? 삶을 되돌이켜 보며 조금은 멈칫하며 어딘가 미진한 듯한 삶의 공백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물에 닿으면 제일 먼저 젖어드는 곳이 있어/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 보지만/ 참 알 수가 없다/ 종소리가 들리면 조금씩 아파오는 곳이 있을 뿐'

[흔적]이라는 시의 한 부분에서 시인의 마음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시 말고도 '뛰어내리는 것의 비애'나 '나이든 노부부의 길 떠남'이 시인의 시선에 잡히는 것을 보면 시인은 조금 회한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희덕 시인의 이 멈칫거림이 더 소중해 보인다. 오래 서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고단함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충실히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 시집은 이렇듯 사색과 휴식의 공간이 되기보다는, 후회와 반성의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삶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의 나이를 천천히 숙성시켜가고 있는 듯 하다. 젊음도 아니고 늙음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에서 중간점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면 함께 휴식할 수 있다. 팽팽히 긴장되었던 마음을 조금 느슨히 풀어놓고 '어두워지는 것'조차 '아파오는 곳' 조차 곱게 쓸어안으며 시인과 함께 고요히 사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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