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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ㅣ 창비시선 211
이면우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평점 :
한 선배가 추천해 주어서 읽게 된 시집이지만, 최근에 읽은 시집 중에 가장 따뜻한 느낌이었다. 지하철을 타면서도 읽고, 저녁노을이 질 때도 읽고, 미술관 앞에서도 읽었다. 이 시집의 제목을 본 한 친구는 제목이 참 좋다며 연신 감탄하였다. 그래 그 말이 맞는지도...시집이란 제목에서부터 그 분위기가 전해져 오는 것인데 잘 지은 제목을 보면 절로 손이 가게 마련이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이 제목은 쓸쓸하면서도 온화하게 삶을 껴안으려고하는 시인의 품성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삶이 묻어나면서도 속되지 않은 순수함을 그대로 껴안고 있으니 말이다. 유용주 시인이 시집 뒤에 실은 서평은 말 그대로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이 시인은 연봉 1380만원을 받는 계약직 보일러공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것이다. 아차, 이 사실을 알고 놀라는 내 안에도 하나의 편견이 존재했던 것 같다. 시란...학력이 어느정도 되는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 또는 문단 한쪽 귀퉁이라도 끼이려고 하는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 그저 시인은 시로 평가받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 시집 중에 제일 잘된 시보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시는 '부전자전'이라는 시다. 열 두살이 된 아들이 너무 자주 발기가 된다는 이야기를 부모에게 거리낌 없이 하며, 부모는 이를 웃으며 받아들이며 부전자전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솔직한 가정...이런 참된 가정이 또 어디 있을까?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징후로 받아들이게 하는 이 시인 부부의 넉넉함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물론 시인으로서의 삶에 몰두하여, 가정을 내팽개친 시인이 한둘이 아닌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예술가적 기질때문이라고 쳐도...이렇게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면서 아름다운 시를 써나가는 시인이 있다는 것을 보면 감동받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풍성한 밥상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훈훈한 가정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시인의 모습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시집을 읽으면서....너무 빠르지도 않게, 느리지도 않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시인의 목소리를 따라 한 시집을 덮을 때까지 마음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위대한 문학작품을 쓰는 것보다...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문학보다 위대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시인의 시선이 참 진실하게 느껴지고, 소중하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