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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수도원 ㅣ 민음의 시 100
고진하 지음 / 민음사 / 2001년 4월
평점 :
대체 이 사람 뭐야?...시집을 탁 덮은 후에 머릿속에 내내 맴돌던 생각이 입으로 툭 튀어나왔다. 분명히 시편을 읽기 전에 직업이 목사임을 확인했기에...'뭐 종교인이 쓴 시가 그렇고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기대를 한풀 꺽고 읽어내린 시편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우선 첫장에 나오는 시를 보자.
'라일락'
돋을 볕에 기대어 뽀죡뾰족 연둣빛 입들을 토해 내는
너의 자태가 수줍어 보인다.
무수히 돋는 잎새마다 킁, 킁, 코를 대보다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졌다는
천수관음보살을 떠올렸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지극한 보살이 있어
천 개의 눈과 손마다
향낭을 움켜쥐고 나와
천지를 그윽하게 물들이는
너의 공양을 따를 수 있으랴.
이 시를 읽고, 의아한 마음일 가졌던 나는 끝까지 그 의혹을 벗어던질 수가 없었다. 이 시인 무정부주의자...아니 무종교주의자 아닌가 싶을 정도로...모든 종교를 한번에 아우르고 있다. 것두 어설프게 그래 너도 좋다, 너도 예쁘다 식의 허허거리는 아우름이 아니라 나무들이 각각의 잎새들을 껴안듯이 제 안에 사는 산새들을 품듯이 종교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갑고 날카로와 푸르기까지 한 감수성으로 자신과 종교를 조명하고 있기까지 하다. '참 사랑은 밥이 되는 거여'하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순교자적인 희생을 감수하기도 하고, 우주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닳고 닳아 낙타 무릎'이 되도록 기도하기도 한다.
그래도 왠지 마음에 걸렸던 시는 두번 째 시인 '월식'이라는 시였다. 처음 읽을 때에 썩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아 곱씹어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월식
뭉쳐진 진흙덩어리, 오늘 네가
물방울 맺힌 욕실 거울 속에서 본 것이다.
십수년 전의 환한 다덩이 같은 얼굴이 아니다.
푸석푸석 부서져 내리는
진흙 가면, 그걸 볼 수 있는 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퍽 대견스럽다.
하지만, 여름 나무가 푸른 잎사귀에 둘러싸여 있듯
그걸 미리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은
너의 한계,
너의 슬픔.
오래전, 너의 출생과 함께 시작된
개기 월식은 지금도 진행중.
드물지만 현명한 이는 그래서 매일 죽는다.
그리고 안다. 죽어야
어둠 속에서 연인의 달콤한 입술이 열린다는 것을.
욕실 거울에 비친 한 그루 장례목.
이름과 형상이야 어떻든, 너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나무 아래서
너는 질척이는 욕망과 소음의 때를 밀고 고요한 쉼을 얻는다.
달 없는 밤.
이것이 '월식'의 전문이다. 화자가 욕실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진흙덩어리로 보고 있으며, 장례목으로 보고 있다. 그 등골 시리는 섬뜩함이라니...그가 자신을 이렇게 바라보는 것을 스스로 대견스럽게 느낀다는 것은 더욱더 보는이를 두렵게 만든다. 자신을 얼음으로 된 가위로 재단하듯이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차가우면서도 쓸쓸하다.
이 시는 뭐든 대충 대충 행하는...내 자신을 감싸며 옹호해왔던 모습을 거울에 반사시켜 보여주는 듯 했다. 두려울정도로 자신에게 냉철할 수 있는 시인은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적이지 않으며, 제것만을(종교적인 측면에서조차) 추구하지도 않는다. 자연이며 인생을 막무가내로 섣부르게 조화시키려 하지도 않고, 자기만 양지에 있는 척 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시집의 그런 면이 좋다. 몇몇 종교인들의 겉치레나, 세상의 고통은 자기가 다 짊어진다는 식의 헛소리가 아닌 것이 좋다. 자신의 죄에는 관대하며 남의 죄에는 가혹한 그런 글들이 아닌 면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