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3월
평점 :
품절


일상의 한 부분을 떼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을 읽고, 처음에는 그에게 열광하는 수많은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3년전, 또는 4년전에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무미건조한 문체속에 평범한 진리를 담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재능이니까 말이다. 숏컷의 첫 단편은 섬뜩할 정도로 심리적이다. 강으로 낚시를 갔던 남자들이 강간당한체 죽어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서도, 아무런 감정없이 낚시를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 이 얼토당토 않은 상황이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담담한 묘사덕분이다. 과장되지 않은 진실한 말투로 사내들의 무관심한 태도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이 터진 후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사내는 변하기 시작한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사건의 결과를 목격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사내는 이미 그 사건의 중심에 서버리게 되는 것이다. 주위사람들의 의심은 그를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밀어넣는다.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이런 식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일, 또는 엉뚱하고 낯설은 일이 터지면...그 사건에 대한 파장으로 생겨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에 주목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무심한듯 이야기를 던져 놓는다. 독자들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그 감수성에 걸려 들어 묘한 감동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전에는 이런 평범한 듯한 문체가 매력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삶이 이런 평범한 문체처럼 가끔은 기이하고 가끔은 낯설게 인식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버렸다. 이렇게 무미건조하면서도 충격적인, 일상의 연속을 느끼게 될만큼 시간이 나를 떠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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