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여인숙 민음의 시 105
이정록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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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제비꽃 여인숙은 내가 접한 그의 첫시집이다. 전반적으로 시의 수준이 안정되어 있는 반면, 어쩐지 새로움은 크지 않다. 쉽사리 시를 써나가지 않고 한 행 한행에서 치열하게 싸운 흔적이 엿보이지만...시적 대상의 한정성이 느껴져서 아쉽다. 여성들이 보는 여성성과는 다르게 남성들의 보는 모성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신비화되어 있는 듯 하다. 이정록이 가지는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구석기 시대의 여성의 나상)처럼 가슴과 아랫배...생명을 창조하는 '곳간'의 역할이 강조되어 있다.
어머니의 아랫배를 곳간이라는 풍요로운 대상에 빗대어 표현한 것은 신선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고의 변혁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시적 소재보다는 특수한...즉 시를 쓰기 위한 소재로...시를 쓴 흔적들이 엿보인다. 뒷간에 애를 떨어뜨린 어머니라든지...할머니의 죽음과 금붕어의 죽음을 배치시켰던 시에서는 특수한 개인의 역사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더이상의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타까웠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시는 '얼음도마'였는데 이 시는 언강을 도마에 빗대어 그 위의 핏자국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주는 것이 매우 섬뜩하면서도 차가운 죽음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읽은 시집으로는 전반적으로 높은 평점을 주고 싶다. 다음번에는 무의 무덤을 노래한 시나 농촌의 서정을 노래한 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선명하게 삶의 적나라함을 보여주는 시를 기대한다. 어머니를 노래하고 가족을 노래하는 우리나라의 무수히 많은 시인들과는 또 다른 자기만의 색깔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다음 시집에서는 한 사물의 깊이를 파고 드는 시뿐만 아니라...전반적인 사회의 모습을 관조하는 시를 기대해 본다. 너무 쉽게 '초월'로 넘어가지 말고, 좀 더 진지하게 사회와 싸우는 시인의 모습이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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