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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산 이유는 크게 세가지 정도 들 수 있다.
 
1. 가격이 싸다.
2. 사은품이 있다!
3. 내용이 재미있을 것 같다.
 
다행히도 이 중 두가지 정도는 만족스럽다.
더더욱 다행인 것은 3번도 꽤 만족스럽다는 점이다.

1. 가격
 
원래 정가는 9,500원이나 인터넷 할인가 950원이 깎인 다음
무려 3,000원짜리 할인쿠폰이 붙었다.
그래서 실제 구입에 든 비용은 5,550원.
땡 잡았다!
물론 이런 단순 계산 방식의 구매로 인해 - 책과 거리 멀던 - 난 이미 '실버회원'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2. 사은품
 
사은품은 '책 한권 더'에 '쵸콜렛피자무료시식권', '다이어리'까지.
 
한권 더 온 책은 '마트형 인간의 그럴싸한 밥상차리기'이길 바랬으나, '아들아 당당한 부자로 살아라'가 도착했다.
아무리 눈 씼고 봐도 동네주민 중에 아들에게 이따위 책을 줄만한 위인은 없는 지라 선심 쓰기도 틀렸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정~~~말 이상하다!)
그리고 어찌나 아들만 부자여야하는지.
 
쵸콜렛피자무료시식권 역시 다른 무언가를 사야 덤으로 더 주는 거였고, 그나마 가게는 그닥 가볼 일 없는 동네.
친정이 그 동네인 언니에게나 줘볼까나?
 
다이어리는 생각외로 원츄~!
아마도 2007년도 내내 사람들은 내게서 새빨간 다이어리를 보게 될 것이다.
 
3. 내용
 
어릴 적부터 작두개미 연구에 흥미를 보여 언젠간 적두개미를 연구하겠다는 꿈을 품은 TC.
그러나 그는 어느새 35년동안이나 상환해야할 대출금 덩어리인 집과 자동차, 가구과 차고 정도를 가진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회계사다.
 
세째아이를 갖고 싶었으나 아이를 키울 '다락방이 없어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막아야한다는 공포스러운 사실을 깨달은 어느 날.
그는 자기 인생과 이 나라(체제)의 대차대조표를 짜본 결과
1) 자신이 빚진 것은 실은 돈($)이 아니라 시간(T)이며 결국 T = $이다.
2) 이 체제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소유하고 있고, 자신에게 빚진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생 적두개미를 연구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TC는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차리는데 바로 '시간을 파는 자유주식회사'.
그가 작은 플라스크에  담아 파는 시간은 온전히 산 사람의 소유가 되었고, 이 상품은 공존의 히트를 치게 된다.
 
처음 5분짜리 시간의 플라스크를 팔았을 때, 정부와 기업은 오히려 노동자의 작업 능률이 상승한다고 무척 기뻐하였다.
2시간짜리를 팔기 시작하자 기업은 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해야한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으나, 정부는 실업문제 극복이라며 여전히 좋아하였다.
1주일짜리 플라스크가 생산되자, 조만간 모든 노동자 임금의 1/4이 자유주식회사로 흘러들어갈 것이라 판단한 정부와 기업은 플라스크에 '유통기한'을 부여하는 법률을 통과시켜버린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 위기를 맞은 TC는 유통기한 15일 이내 한 사람당 35년짜리 시간들을 팔아치우고 대신 상환금 남은 집들을 모두 사들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살 집이 없어졌으나 35년치의 자신만의 시간을 되찾았고,
자유주식회사는 나라의 모든 부동산을 소유했으나 누구도 돈이 없어 집을 사지 않으니 부동산업은 쫄딱 망하고 '체제 전복세력'으로 찍혀 정부에 몰수당했다.
한편 정부는 모든 부동산을 소유하게되었으나 누구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모든 국민들의 시간이라는 부채가 자동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10일도 안되어 일어났다.
 
그럼 이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TC는 또다시 아이디어를 낸다.
원래 T = $.
나라는 국민들에게 시간을 빚지고 있다. 그러니 그 시간을 돈으로 사기로 한다.
다만 합리적으로.
예를 들어 집은 35년 상환이 필요한 것이 아닌 2,3년 정도의 시간으로 구매가 가능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여생 남은 시간을 기준으로 구매력이 생기는, 사실은 너무 당연한 데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게 그런거다.
결국 노동자가 노동을 멈추는 순간, 체제와 우리 사이의 대차대조표는 완전 반대가 된다. 체제는 그들이 차압해놓은 우리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부채로 떠안게 된다.
 
TC는 말한다.
"국민들이 평생 참고 살았고, 훨씬 더 여러 해 동안 감당해야 했을 대차대조표를, 체제는 단 일주일도 견딜 수 없었다는 게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그가 발명(특허 신청해서 팔았단다.ㅋㅋ)한 '시간 팔기'.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발명(?)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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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xain 2006-12-0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보았어요 ㅋ(책말고 님의 리뷰;페미니스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긴 합니다만..) 근데 질문하나! 적두개미란 말은 붉은머리개미를 님께서 개역하신건가여? 아님 책번역자의 번역인가여? 넘 궁금.^^ hexain

jinnee 2006-12-18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본문에 나오는 표현임다.^^
 
플라워 오브 라이프 1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요시나가 후미의 작품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건,
다소 불편한 과거의 사연이 있는 인물들과
그들의 사소하지만 이벤트같고 활력이 느껴지는 일상과
이 모든 것을 책이라는 2차원 공간에 담아내는 솜씨좋은 작자의 구성 때문이다.
 
[플라워오브라이프]에도 나를 만화책으로 이끄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백혈병을 앓고 고등학교도 1년도 꿇어들어갔으나 여전히 씩씩한 녀석,
백혈병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될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동생을 부려먹는 듯 보이나 실은 많이 챙겨주는 누나,
누구에게나 편안함으로 감동을 주지만 뚱뚱해서 약간 스트레스 받는 녀석,
만화 매니아에 남다른 사고방식으로 타인의 이상한 주목(?)을 받는 녀석,
불륜인 주제에 아이들에 대한 시선은 괜찮은 것 같아보이는 교사들...
 
1권밖에 못봤지만 마지막권까지 이어질 느낌을 알고 있다.
아마도 요시나가 후미가 만든 인물들은 
여러 소소한 일들을 겪게 될 거고,
자기중심으로 하던 생각의 폭에 타인이 끼어들게 될 거고,
그로 인해 사람을 보고, 알고, 이해하게 될 것이며,
왠만하면 다들 행복해질 거다.
 
하지만 이 만화는 결코 온정적인 눈길이나 해피엔딩을 위한 장면 연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겪게 될 소소한 일상에는 가슴 아프거나 기분 나쁜 경험들도 많이 포함될테지만,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사회에 대한 인식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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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 움베르토 에코가 들려주는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아시는 분은 아실 지 모르겠으나, 나는 전혀 모르던 사실.
글쎄 아시는 분은 아실 만한 움베르토 에코가 동화를 3편이나 썼단다.
동화책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에는 움베르토 에코가 쓴 '폭탄과 장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뉴 행성의 난쟁이들'이 수록되어 있다.
 

[폭탄과 장군]
 
첫장을 폈다.
"옛날에 아토모라는 원자가 있었습니다."
네? 원자라고요?
'원자라니? ATOM 말이냐?'
 
2장을 넘겼다.
"...원자가 모이면 분자가 되고,...엄마도 원자로 만들어졌고..."
아뿔사~ 그 '원자'가 맞다!
 
매 장을 넘길 때마다 그 장에서 느끼거나 알거나 생각해야 할 것들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이를 테면 원자가 모든 물질의 근원인 거,
아토모라는 원자가 속해 있는 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될지,
권력자와 자본가가 만나면 어떤 음모를 꾸미는 지,
폭탄이 없는 게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깨달음,
막판에 권선징악까지^^;;
(물론 이렇게까지 어렵게 쓰건 아닙니다요)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이 동화는 미국, 러시아, 중국인들이 서로 우주인을 화성으로 보내면서 의사소통 부재, 서로간 불신을 겪다가, 고독감과 '마마'라는 단어의 공유를 통해 이해를 확보하는 내용이다.
물론 이들이 만난 화성인은 공격적 외모로 인해 처음엔 불신을 가졌으나, 마찬가지로 소소한 행동으로 인해 서로간의 이해가 가능해진다.
 
나름대로 독특하게 본 내용은 지구인이 우주로 우주인을 보낸 이유.
우주인들은 매우매우 위험했지만 행성을 여행하고 별을 정복하고 싶어했다.
why?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지구가 좁아졌기 때문.^^
꿈과 희망과 호기심에 가득찬 기존의 우주 여행 동화와 마구마구 비교되는 대목이다.
  
[뉴 행성의 난쟁이들]
 
제일 재미있게 본 동화인데, 환경문제, 권력문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동화를 보니 움베르토 에코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지구의 한 힘있는 황제가 신대륙 발견을 꿈꾼다. 하지만 지구엔 더이상 신대륙이 없다.
그래서 우주로 신하를 내보내봤다.
그러다가 '뉴'라는 행성을 발견하고 문명을 전해주려 한다.
하지만 뉴 행성의 거주인 난쟁이들은 초대형 망원경으로 지구를 봤으나 영~ 탐탁치 않다.
매연으로 아예 안보이고, 빠르게 가려고 차를 개발했다면서 도로가 꽝꽝 막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래서 오히려 뉴 행성의 난쟁이들이 제안한다. '우리가 지구를 발견한 걸로 하자'고...
 
이 동화는 첫줄부터 재치가 넘친다.
"옛날에 힘 있는 황제가 지구에 살았습니다.
혹시 지금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동의 (-.-)/
  
[다 보고나니]
 
움베르토 에코의 동화책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나 그 사실의 함의를 기반으로 깔고 그 위에 자신의 가치관을 창작의 내용에 섞어 보여준다.
예를 들어 원자가 뭔지를 설명할 때나 미국, 러시아, 중국 우주인 등등은 그의 현실 기반적 모습을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한편 권력자와 자본가가 모여 폭탄 투하 계획을 짜거나 지구인의 우주 진출 계획에 숨겨진 야망, 인간 문명의 모순 등은 벌어진 현상에 대한 가치 해석을 동반하고 있다.
 
이 동화책은 이러한 모양새 하나 하나를 살펴나가면서
소소한 표현에 섞인 의미가 주는 잔 재미와 씁쓸함을 독해해나가는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인지 난 3편 모두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그러나 나(我)나 움베르토 에코를 너무 믿으면 안된다.
아이들은 냉정하다.
초등학생 2명의 자식을 가진 한 엄마가 애한테 이 책 사줬더니, 좀 보다가 재미없다고 던졌단다.^^
 
사실 뜻 맞는 어른끼리 공유하는 동화책과 아동,어른이 공히 나눌 수 있는 동화책은 백지 한장 차이조차 안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어떻든 세상은 가끔 공평하다지 않던가?
움베르토 에코에게 존 버닝햄이나 앤서니 브라운을 기대하면 안되쥐.
하지만 확실히 새로운 동화글의 모습을 본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만족.
 
[사족1]
내가 출판사였다면 3권 엮어서 내지 않았다, 다 따로따로 냈지.
보육노동자 입장에 초점을 맞춰서 볼때,
대략 책 구독 대상이 유아 ~ 초등학생이라 치고
책 내용이 위와 같으면 어른과의 상호작용을 염두에 둘 것 같다.
 
3권 엮고 크기를 작게(지금 나온 모양새가 이렇다) 하면,
보육시설에선 사용하기 힘드니까 보호자들의 개별 구매방식으로 가게 되고, 아동의 흥미에 따라 개별 아동으로 구매된다. 그러면 첫눈의 호감에 엄청난 신경을 쓰는 반면, 보호자가 이 동화책의 의미를 이해하고 아동과 적절한 상호작용을 모색할 지 여부를 확신할 순 없게 된다.
 
하지만 낱개로 만들고 책 크기를 키우면 시설의 교사가 선택하는 영역 범위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고(책은 일단 크고 튼튼해야 어린이집 교사가 눈길 준다.), 이는 해당 교사의 책에 대한 이해를 담보하는 동시에 아동과의 적절한 상호작용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앗, 근데 이렇게 하면 초딩에겐 접근성 떨어지는 건가? 모르겠당.)
 
사실 존 버닝햄이나 앤서니 브라운 책은 유명하지만, 그 '유명하다, 훌륭하다'라는 평가 안에는 교사의 선택과 아동과의 상호작용이 큰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족2]
근데 삽화, 죽인다.
에우제니오 카르미라는 사람이 그렸다는데, 정말 이렇게 다양한 소재와 상징적 표현으로 내용 이해를 배가시키는 그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주의~!
아동의 시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말했죠? 냉정하다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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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쿠 1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시나가 후미의 신작이 올 초에 나왔다!
(근데 일본에선 후미 요시나가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왜 바꿔부르지?)
기이하게도 배경은 일본 막부시대 한 1700년대쯤 되는 것 같은데
'오오쿠'라는 것도 원래 작가가 굉장히 좋아하는 시대극 제목이란다.
 
다만 내용은 나오는 쇼군이 여자이고,
쇼군이 거느리는 삼천 궁남이 있다는 점이 약~~간 다를 뿐.

처음엔 곰에, 전염병에 사람들을 왕창왕창 죽이길래
당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시츄에이션인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남자 인구를 여자의 1/4로 확 줄이려는 설정.
 
이 설정이 끝나고나서부터의 세상을 묘사하는데,
읽으면서 내내 "쿡쿡"거리는 폭소 한마당이었다.
 
남자들이 얼마 안남았으니
농사도, 전쟁도 모든 집안밖의 일을 여자가 맡게 되었고,
가업도 여자가 이어받고,
혼인제도는 완전 붕괴되어 돈 있는 여자나 혼인, 없는 여자는 유곽에서 남자를 샀다.
 
그 와중에 막부라는 무가(武家)사회 시스템 역시 남녀 역할 교체. 워낙 관료화되어 있어서 교체가 비교적 용이했댄다. ㅋㅋ
 
워낙 일상 속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착착 달라붙는 구어체 묘사에 능한 작가이고,
인생 역전을 맛보는 상상의 나래가 겹쳐 흥미진진.
 
이를 테면, 들어온 혼담에 버티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냉큼 장가를 가야지!"라고 외치거나,
혼인이 싫어 차라리 쇼군이 삼천궁남 거느리는 오오쿠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남자에게 여자 소꿉친구가
"좋은 옷을 입고 호사스런 생활을 하고 싶은 거?"라고 말하는 등의 장면은
역할이 바뀌었다면 충분히 예상되는 대화이다.
특히 오오쿠에 들어간 오노부가 검술이 꽤 훌륭하다는 선배를 이겼을 때,
그 선배가 하는 말,
"하! 너 따위보다 이 몸이 훨씬 훨씬 아름답다구!!"라고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외치는 장면에선 삼천명 중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 진하게 느껴졌다.
 
요시나가 후미는 이러한 설정을 코믹으로 점철시키지 않는다.
그 시대는 마치 현실인 양 진지하고,
오오쿠는 아름다운 이들의 꿈같은 이상향이 아니라 쇼군의 애정에 목매야 하는 불신과 긴장의 세계이다.
동료와의 대화에서는 힘겨운 남자로써의 삶을 얼핏 이야기한다.
부모가 시켜 몸 팔았던 이야기, 장가들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자 밥도 않주고 결국 쫓겨난 이야기 등.
 
여자들이 이렇게 왠지 유쾌, 상쾌, 통쾌할 것 같은 인생역전 시대극을 마련해줘도
단지 쇼군에게만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것은
매 장면마다 묘사되는 힘겨운 남자들의 삶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요시나가 후미가 바라보는 소소한 삶에 대한 통찰은 매우 놀랍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도
마지막 장이 끝나면 항상 가슴 한켠에 무언가를 남기는 결코 가볍다 볼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수많은 여아가 태중에서 살해당하고 여자의 수가 심각하게 줄어드는 현상을 보고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 여자들 수가 적으면 상대적으로 대우받으며 살지 않을까?'
그런데 이 만화 보니 꽤 긴장된다.
어차피 일부일처제야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 중 하나일 뿐인데
그것으로 세상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제도야 변할 것이 자명한 일.
보호한답시고 집안으로, 유곽으로 꼭꼭 숨기고, 권력에 따라붙는 물건으로 전락하는 건 역시 인간의 삶이 아니다.
노조에 온지 1년 좀 넘는 지금의 교훈, 세상은 쪽수로 승부를~! ㅋㅋ
 
벌써 1권밖에 안되었는데 작가가 어찌나 캐릭터들을 확확 없애는지...
남자들 싸그리 죽인 것도 모자라
검소한 쇼군은 막부에 돈 없다고 오오쿠의 남자들 50명 정도 해고시키고,
꽤 주인공 급일 것 같던 오노부는 벌써 역할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보통 캐릭터 만들면 애착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 과감히 없앨 수 있는 것도 바로 작가의 힘?
 
아직 혼인하지 않은 쇼군과 잠자리하는 오오쿠 안의 남자는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일부러 오오쿠의 남자들을 건드리지 않고 마당 쓸거나 방바닥 닦고 있는 하인 건드리는 쪽으로 우회하는 쇼군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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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zuaki 2006-12-1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시나가가 성, 후미가 이름.
일본서도 한국처럼 성 먼저 쓰니까, 요시나가 후미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영문으로 쓸 때 서양 흉내를 내어 Fumi Yoshinaga라고 쓰는 것이지요.
노조 일을 하시는군요. 제 생각에도 세상은 소수보다는 다수에게 훨씬 유리한 것 같습니다.
 
암살주식회사
잭 런던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잭 런던의 장편 소설이되 잭 런던만의 장편소설이라하기엔 좀. 쓰다 만걸 후대의 로버트 피쉬가 완성시켜놓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뒷 부분은 스릴러일 뿐이다. 사실 이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앞부분에 촘촘히 다 짜여져있다.
그가 -비록 완성하지 못했으나- 썼던 이 소설은 꽤 의미심장하다.
 
 
내용은 간단하다.
 
옛 맑스주의자들이 만든 암살단.
주로 들어오는 의뢰는
뭔가 꾸미려하지만 항상 어설퍼서 실패하고마는 아나키스트들 대신 사회의 악을 처단하고,
'아나키가 한 일'이라고 떠들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 많다.
이들은 처단할 대상에 대해 실제로 '사회의 악인가?'라는 점을 냉정한 평가를 통해 판단한다.
평가 후 처단이 결정되면 1년 안에 처리하는데, 혹시 못하게 되면 의뢰인에게 대가를 다시 반환한다.
 
어느날 그들의 존재와 방식은 그릇되었다고 생각한 한 젊은이가 암살단의 지도자를 만나 지도자의 목숨을 의뢰한다.
젊은이는 그들의 존재 자체의 모순과 암살이 주는 사회의 위기에 대해 수준높고 열띤 구라구라를 통해 풀어나가고, 지도자는 결국 그의 논리에 굴복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젊은이는 '이제 암살단이 해체되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지도자는 스스로를 처단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온 조직망을 동원하여 자신의 처단을 명한다.
 
갑작스레 지도자의 대리가 된 젊은이.
그가 만나게 되는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학문에 능통하고 고상하고 순수하고 논리적인 이성을 지닌 지식인들이다.
그들의 이치에 맞는 한 무슨일이든 충실하게 따르는 조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이치에 너무 충실하여 조직원들과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된 지도자.
 
보기엔 그냥 '미친놈들!'일 뿐이다.
그러나 이 고지식함의 사슬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마치 원리원칙에 갇혀 끝내 자멸해버리는 일군의 좌파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진정성이라면
충분히 그들과 공명할 수 밖에 없는 측은지심이 발동할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게 누구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말이다.
여자 캐릭터는 남자들 이어주는 물건에 지나지 않아 살짝 기분 나쁘지만
어떻든 소설로써의 박진감 자체도 만만치 않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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