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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4월
평점 :
아주 어렸을 때, 중학교 정도 됐던 것 같다. 사촌언니네 집에 놀러가면 언니방 벽면을 둘러싼 책장을 훑으면서 이것저것 뒤적여보던 때가 있었다. 그때 저자가 '무라카미'로 시작하는 책을 냉큼 집어 읽어내려갔다. 금기된 것들에 대한 자유분방한 지껄임, 시부렁거림으로 별것 아닌 것도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 무언가로 그려내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책들이 제목만 봐도 굉장히 세련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읽어내려가면서 점점 내가 알고 있던 저자와는 너무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읽고난 뒷맛이 아주 텁텁했다.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류의 작가였기에 나는 놀라서 다시 앞페이지를 유심히 보았다. 그렇다, 하루키가 아닌 류였던거다. 무라카미류. 아마도 그가 쓴 에세이였나, 소설이였나 기억도 잘 안나지만 '이 작가 책은 다음부턴 가급적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던 게 기억난다.
출판사 서평단을 반은 재미로, 반은 이 출판사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활동 첫 책으로 <식스티나인>이 왔을 때, 나는 '하필...'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필...' 첫책이 무라카미 류라니... 윤이형의 <붕대감기>를 출판했던 곳에서 <식스티나인>이라니, 물론 오래 전 책이니 이해는 한다마는... 암튼 오랫동안 리커버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확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재탄생되어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내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 다시 읽어보자. 그렇게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책으로 좋은 말을 한 마디라도 남길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남겨보자면, 리커버된 표지가 꽤 산뜻하다! 이전 책은 두꺼운 양장이었는데, 이 책은 가볍고 휴대가 용이한 사이즈라 들고다닐 맛이 난다! 하지만 내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은 ... 이런 책이 리커버될 가치가 있는건가? 하는 거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라는 메인 카피를 지금 이 시대에 던지기에는 너무 가볍지 않나?
무라카미 류는 이 책을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고, 이보다 더 재밌게 쓰기도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고 하던데.. 나는 이미 너무나 꼰대오브꼰대가 되었나보다. 가볍게 흐르는 문장과 인물, 동선, 사건에서 자주 불쾌함을 느껴야 했다. 서양문화에 경도된 어린 일본인의 모습을 '중2병'을 앓는 주인공 '겐'을 통해 잘 형상화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겐은 자신 외의 거의 모든 타자를 깎아내리며 조롱하고 희화화한다. 물론 자기도 조금 깐다. 조금.. 그리고 같이 웃어보자고, 재미좀 보자고 말하는데... 나는 세대 차이인지, 시대차이인지, 취향차이인지 그 모두인지 같이 웃기 힘들었다. 아주 꼬장꼬장해졌나보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난무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부분이다. 17살 겐은 자신의 첫 성경험을 성사시키기 위해 주위를 희번덕 거리며 눈에 띄는 여성을 모두 성적 대상화한다. 얘는 이렇게 생겼다, 쟤는 이렇게 생겼다, 쟤는 또 이렇게 생겨 할맛이 안난다는 둥. 동물에 비유하기도 하고 여성의 생식기를 너무 노골적으로 희화하한다. 여성이 나오는 부분은 거의 모두 육체적 언급이 뒤따른다. 이 얼마나 후진적인 문학인가! 이런 글을 21세기에 재조명해야할 이유가 뭐지?
일본은 위에 있는 자가 자신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는 자에게 굉장히 교묘한 방식으로 무례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아주 교묘하게 잘 포장해서 상대의 입에 재갈을 물려버린다. 그런 문화 속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 여성 스스로에 대한 인식 등이 예나 지금이나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비참한 인식 수준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중고등학생이 읽은 <식스티나인>은 어떤 감상이 나올까? 궁금하긴 하다. 해방감을 대리만족할까, 아니면 자신들과는 요원한 옛 시절의 한 풍문으로 여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