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 온 뒤를 걷는다 - 눅눅한 마음을 대하는 정신과 의사의 시선
이효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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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눅한 마음을 대하는 정신과 의사의 시선 -

정신과 의사가 쓴 심리학 에세이. 


“긴 모정의 무재 속에서

그는 스스로 자라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 


지금은 자신에게 남겨진 의무인

엄마를 돌보며, 늙어버린 엄마를 따라

자신도 늙어간다.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감히 알지 못한다.

그들의 삶의 무게를 그저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다.”

- 책 본문 중에서



<지이현 서평>

책의 제목과 표지의 그림부터가 예술적입니다.

비가 온 다음 날의 바닷가. 우산을 든 한 남자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다른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정신과 의사를 표현한 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라는 예기치 않은 삶의 흐름, 사건, 고통 속에서 누군가는 길을 잃기도 하고,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삶의 궤적에서 틀어지기도’ 하고, ‘때론 매우 절망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은 누구에게나 있고, 우리 모두 비 온 뒤를 걸어갑니다. 비 온 뒤에 조금 더 자신의 자리에 있는 자들이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작가는 그것이 바로 ‘정신과 의사’인 자신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정신과 의사가 쓴 자기계발서는 많이 보았던 것 같은데, 심리학 에세이 중에서도 이렇게 담담하면서 아름다운 문체로 자신을 투영한 경우가 있었나 싶습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환자를 바라보는 정신과 의사. 의사이기 전에 그저 ‘한 사람’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습니다.

특히 첫 장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너무 좋았습니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그들 역시 나의 세계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삶의 큰 비극 앞에서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운이 좋게도, 그리 큰 비극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비 온 뒤를 평온하게 걸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이를 한 걸음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고,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되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책 속에서>

“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나는 바랬지”

-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노랫말 가운데

“치매나 조현병 같은 만성질환을 앓는다는 것

그리고 그런 환자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끝날 기약이 없는 장기전에 동원된 병사의 삶과 닮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들 중 더러는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또 많은 가족과 환자는 서운하더라도,

다들 제 갈 길 따라가기 마련이라며

그 시간들을 버텨낸다.

그래도 누군가는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내심 바라며.”


“호전되지 않는 만성 질환으로 장기 입원 중인 환자의 삶은 ‘비 온 뒤 걷기’를 떠오르게 한다.

예기치 않은 고통의 시간을 겪었고, 그 때문에 원하던 삶의 궤적이 틀어졌고, 그것은 때론 매우 절망적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그 비 온 뒤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나의 일은 그 길을 조심스레 걸어가는 이들을 돕는 것이다.

조금씩이라도, 얼마간이라도, 어제보단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생각해보면, 그 비 온 뒤의 길이라는 것은 내 환자들만 걷는 길이 아니다. 나도 그렇고, 우리 대부분 역시 그런 삶을 산다.

우리는 모두, 비 온 뒤를 걷는다.”


<작가 소개> 이효근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정신병원에서 만성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을 진료하고 있다. 정신과의 일이란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람과 질병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안타까운 순간과 아쉬운 마음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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