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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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개천에 쪼그려 앉아 손으로 물을 길어 올리면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더운 여름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몇 방울을 추어올리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결국 남는 것은 가슴팍과 겨드랑이의 축축한 기분일 것임에도. 마지막 편 때문에 도서관의 찬 벽에 기대 앉아 눈물콧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몇몇 지점에서 그다지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내 생각에 이쯤에서 끊을 법도 한데..? 하는 곳보다 좀 더 간달까. 두어 개의 단편 속 상상력은 조금 버거웠다. 그러나 이 작가가 가진 생각과 감성을 잘 정리한 여러 개의 문장은 읽을수록 고맙고 공감될 따름이다. <벌레들> 에서 벌레나 세제, 나무를 다루는 방식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벌레를 정말 싫어해서 인상을 한껏 구겼지만..

본인이 꺼낸 소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각 단편마다 전개방식, 배경, 이야기 거기다 주인공들의 나이도 성별도 다 다른 와중에 그들이 바톤 하나씩을 챙겨 같은 꼭지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잔뜩 젖은 늪에서 펼치는 이유 없는 마라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물 이라는 소재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아 눈물이 더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 손을 펴면 아무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제목은 여름날 이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얻었다. 다 읽고 나니 이 가사 한 줄이 입술에 끈적하게 맴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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