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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ㅣ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고유하다. 똑같은 두 인간, 똑같은 두 송이 들장미는 상상할 수 없다. ...... 삶은 그 고유성과 독특성을 폭력으로 지워 없애려는 곳에서 고사한다. " - 제1권 1장 -
이 문장은 제1권의 1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이 저자 바실리 그로스만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소설에서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라는 전체주의가 어떻게 인종주의와 정치적 원리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억압하며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무시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들은 어떻게 그 체제에 순응했는지, 환호했는지, 또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냈는지를 증명하고, 독자에게 당신의 시대는 어떠한가?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느꼈다.
<삶과 운명>은 소련 작가 바실리 그로스만이 2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실상을 인물들의 다양한 서사를 통해 보여주는 소설로, 매우 어려운 출판 과정을 겪은 책이다. 작가가 1959년에 이 소설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중반에야 마이크로필름으로 밀반출되어 1980년 스위스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작가의 나라인 러시아에서는 1989년에야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전체 3권으로 구성된 장편으로 1942년 9월경부터 1943년 3~4월경까지, 약 6개월여 간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1942년 스딸린그라드 전투를 중심으로 수많은 인물들의 시선(전선에 있는 군인들의 시선, 전쟁속에서도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시선, 인종적 차별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유대인의 시선, 정치적 상황에 의해 숙청당해 강제수용소에 보내져야 했던 정치범들의 시선 등)에서 개인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의 서사를 담담하게 풀어간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책의 주요 인물인 시뜨룸(비쨔, 비쩬까, 빅또르 빠블로비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 책을 읽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지명들이 아닐까 싶다. 한 인물이 다양하게 불리는데다가 영어식 표기법에 익숙하다보니 러시아식 이름과 지명이 낯설어 쉽게 입에 붙지 않았다.인물관계도를 그리면서 읽었음에도 거의 1권을 다 읽고서야 대충 인물관계가 맥락적으로 연결되었다.)의 어머니인 '안나 세묘노브나'가 아들에게 쓴 편지 부분이었다. 그 편지의 내용을 통해 당시 유대인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너무나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을 차별하고 학살했던 것은 단지 명령에 따라 효율적으로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이 편지를 읽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자신의 이익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가장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곧 유대인들의 이주가 선포되었는데, 한 사람당 소지품은 15킬로그램까지만 허락되었어. 집집마다 노르스름한 선포문이 걸리더구나. 이주하지 않는 사람은 총살이라고."
"내 이웃 몇몇은 참 이상하게도 알뜰하더라. 두 이웃 여자는 내 앞에서 누가 내 의자를 가지고, 누가 작은 책상을 가질 것인지 다투기 시작했지.... 중략......예기치 않게도 늘 침울한 얼굴에 무정해 보였던 내 환자 슈낀이 짐을 들어주고, 300루블을 쥐어주고, 일주일 에 한번 울타리로 빵을 가져다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더구나. ... 그제야 나는 다시 스스로를 인간으로 느낄 수 있었어. 집 지키는 개만이 나를 인간답게 대해주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지."
안나는 오히려 게토에서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말한다. 게토에서는 말처럼 차도로 다니지 않아도 되고, 악의에 찬 시선도 없고, 지인들이 내 눈을 들여다보거나 나를 만나는 것을 피하지도 않고, 모두가 파시즘이 붙인 낙인을 지니고 있어서 더이상 권리 없는 짐승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느껴보지도 못한채 러시아인으로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유대 민족이라는 이 운명은 그녀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다. 유대인이라는 이유가 죽어야 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유대인들 스스로 구덩이를 파게 하고 구덩이에 몰아넣고 모조리 총으로 쏴버리는 그들의 잔혹함, 심심풀이로 철조망 뒤에서 아이들을 조준해 쏘는 독일군의 모습, 나중에 이러한 집단 학살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를 소각하던 브렌네르들의 이야기들이 자세히 묘사된다. 인간이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사물처럼 대우받을때에도 인간이기 위해, 이성과 상관없이 언제나 희망을 놓지 않는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안나의 입을 빌어 저자는 말한다.
"20세기 전반부는 사회학적, 인종학적 이론들에 기반하여 유럽 주민의 거대한 인구층을 완전히 말살한 시대로 인류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해할만한 일이지만, 우리 시대는 소심하게 이에 대해 삼가 침묵하고 있다."
"당시에 드러난 인간 본성의 가장 놀랄 만한 특성들 중 하나는 굴종이었다. -중략- 이 굴종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무서운 힘에 대해 말해준다. 전체주의적 사회체제의 초강도 폭력은 모든 대륙에서 인간 정신을 마비시키는 능력을 지녔음이 판명되었다. -중략- 전체주의 국가의 폭력은 너무나 거대해서 더이상 수단이기를 멈추고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 환호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인간의 본성은 변화를 겪는가? 인간의 본성이 전체주의 폭력의 가마솥 속에서 달라지는가? 자유롭고 싶다는 그 고유한 열정을 잃게 되나? 이에 대한 답변에 인간의 운명과 전체주의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변화한다고 대답한다면 이는 국가 전체에 전 세계적이며 영원한 승리를 약속하는 것이고,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정이 변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면 이는 전체주의 국가에 파멸 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봉기..봉기...봉기... 사보따주들...저항운동...파업...수많은 저항의 흔적들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자유를 향한 열망은 탄압받지만 그럼에도 계속 존재해왔다. 자유를 향한 열망은 탄압받지만 그럼에도 계속 존재해왔다. 노예 상태가 되는 인간은 운명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이지 그 본성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를 향한 본성적 갈망은 근절할 수 없다. 그것을 억누를 수는 있어도 말살할 수는 없다. 전체주의는 폭력을 거부하지 못한다. 폭력을 포기하면 전체주의는 파멸한다. 영원한, 중단 없는, 직접적인 것이든 가면을 쓴 얼굴에서 나오는 것이든 초강도 폭력이 전체주의 근간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결론 속에 우리 시대의 빛, 미래의 빛이 있다."
작가는 1권 50장에서 직접적으로 위와 같이 말한다. 그는 삶을 위한 투쟁의 유일하고 진정하며 영원한 의미는 인종, 신, 당, 국가의 이름으로 일치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 속에, 인간의 툭수성 속에, 특수성에 대한 권리 속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전쟁'과 '전체주의'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지키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인물들의 이야기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 또는 스탈린의 스탈린주의, 일본의 군국주의, 또는 독재자들의 극악무도한 독재와 억압, 폭력은 어떻게 가능한걸까? 단지 한 개인에 불과한 그들이 어떻게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고, 그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충분한 능력이 있는 개인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동조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하게 되는 걸까? 다양한 정치적 시스템과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고, 정당화시키는 과정이 있었겠지만 왜 저지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주어진대로 체제에 복종하고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는데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식적으로 악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악에 둔감해지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키는 사고의 과정을 거쳤던 것은 아닐까?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적극적으로 가해자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즉 자신의 행동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악함의 탓을 내가 아닌 다른 것에 돌리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시켰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악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진 것은 아닐까?
<삶과 운명>는 개인의 삶이 시대적, 정치적 상황, 운명의 수레바퀴에 걸려들었을 때 인간이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는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고 탐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