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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준 선물 - 쉼표와 느낌표 1
유모토 가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푸른숲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비가 내리던 6월 어느 날, 도깨비잎을 보며 몽상에 젖어있는 6학년인 류의 생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류와 모리, 하라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다녀온 하라와 장례식 이야기를 나누며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된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일까? 귀신이 될까? 가벼울까? 무거울까? 그런 궁금증들은 셋을 죽음에 대한 중압감과 죽음을 확인하고픈 욕망에 시달리게 한다.
그래서 류, 모리, 하라는 전혀 손질이 되어 있지 않고, 쓰레기 더미 따위가 가득 쌓여있는, 곧 죽을 것 같은 한 할아버지의 집을 감시하며 죽음을 확인하기로 한다. 더운 여름에 화로앞에 앉아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할아버지, 슈퍼마켓에서 항상 일정한 물건만 사는 할아버지, 세상에 불만 가득한 눈초리를 주위에 던지고, 또 다시 어두운 집안에서 죽은 듯 살아가는 할아버지였다.
몰래 훔쳐보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할아버지는 어느덧 류와 모리, 하라에게 자신들도 모르게 익숙한 사람이 되어가고, 이젠 남이 아닌 걱정이 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맛있는 생선회를 몰래 갖다 놓기도 하고, 몰래 쓰레기를 정리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세 소년도 할아버지에게 인식되고, 뭔가 불편하면서도 기다려지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어쩌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할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세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분노와 함께 삶의 의욕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부딪치면서 살아야할 이유를 찾은 것일까? 마당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잡초를 뽑고, 빨래줄을 걸어 빨래를 널고, 집에 페인트칠을 하고, 마당에 코스모스를 싶고, 수박을 먹으며 할아버지와 세 소년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내면의 모습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친구가 되어버린 할아버지의 내면의 이야기, 할아버지의 과거에 관심을 기울이고, 할아버지의 희망을 이루어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과거를 찾아 떠나고, 이미 할아버지에 대해 만들어진 기억만을 가진 할머니를 대신해 줄 다른 할머니를 찾기도 하면서 할아버지가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게 한다.
여름이 끝나갈 즈음 일상을 떠났다가 돌아온 세 소년은 포도 냄새 가득한 할아버지의 집에서 '죽은 얼굴'이지만 너무나 만족한, 평화로운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동안의 죽음에 대해 가졌던 공포의 감정과는 전혀 다른, 편안하고,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 사소한 많은 것들을 거리낌없이 나누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사람의 부재를 알게 된 순간에 느낀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공허감과 슬픔이었다.
보이지 않는 문제를 하나씩 갖고 있던 류와 모리, 하라에게 이 여름은 할아버지와의 교류를 통해 할아버지를 깨어나게 하고, 더불어 자신들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함으로써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수 있었던 교감의 시간이었고 치유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세 소년에게 낯선이의 죽음은 공포였다. 하지만 관심과 사랑으로 친구가 된 할아버지의 죽음은 살피게 하고, 죽음을 바라볼수 있게 하고, 죽음을 인정하게 한다. 그리고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세 소년의 추억으로 남아 살아가는 동안 대답을 찾는 지침이 되어 주기도 하고, 꺼내어 들춰볼수도 있는 또 다른 삶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