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 노자
양방웅 지음 / 예경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글과 언어가 있었으나 이를 기록할 재료가 변변치 못했던 시대에 만들어진 책들 중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것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그리고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들도 이유야 어떻든 내용이 많이 변질되는 것이 우리가 피부에까지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상식 아닌 상식이라 생각된다. 이 노자라는 책도 그런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이리라. 1973년 중국의 호남(湖南)성 장사(長沙)라는 곳의 마왕퇴(馬王堆)(지명)에서 우연히 발굴된 한나라 시대(206 BC – 220 AD)의 묘에서 다수의 죽간(竹簡) (종이가 없던 시대에 쓰던 대나무를 사용한 책의 일종) 이 출토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죽간 속에서 현재까지 여러 사람이 주를 달았던 책들보다 더 앞서 시기의 책들의 내용이 발견되게 되였다. 주역을 포함하여, 노자라는 책도 그 어둠 속에서도 2천여년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노자의 내용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점이 상당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죽간에서 나온 내용이 마왕퇴(Mawangdui)본(本) 노자가 되었다.

약 10년 전인 1993년에는 중국의 호북(湖北)성 형문(荊門)의 곽점(郭店)에서 발굴된 중국 전국시대(475 BC-221BC)중기의 초(楚)나라 시대의 묘에서도 다수의 죽간이 발견되었고 (여기서 발견된 죽간을 곽점초간(楚簡)이라 부른다), 이 죽간들 속에서 마왕퇴본 보다 앞선 시대의 노자의 내용이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이 죽간의 내용을 바탕으로 완성한 것이 바로 곽점(Guodian) 본(本) 노자가 되었고, 양방웅선생이 집해(集解) 번역한 이 『초간(楚簡) 노자(老子) 』는 바로 이 곽점본 노자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책은 사신 분들은 대부분 이미 다른 본을 바탕으로 번역한 노자라는 책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된다. 기존의 책의 내용과 이 책의 내용을 비교해 가면서 읽어 보고, 그 뜻을 음미해 본다면 어떤 내용에 차이가 있고, 무슨 부분이 변질되었으며, 노자의 사상의 맛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평자의 경우는 노자를 아무리 여러 번 읽어 보아도 그 뜻을 알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으며, 지금도 거기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밝힌다.

움베르토 에코도 어느 책에서인가 지적했지만 일세의 처세술이나 흥미거리 책이 아닌, 달랑 이 한 권을 들고 한적한 휴가지 – 여름의 바닷가라면 더 좋겠지만 – 에서 천천히 곰씹으며 읽고 싶은 책 중의 하나이다. 현대적인 내용까지 포함하여 알기 쉬운 해설을 붙인 저자에게 감사 드린다. 다만 전문성에서는 다소 내용에 부족한 면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족이겠지만, 보다 좀 더 관련되는 내용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많은 분들을 위해서 죽간과 노자에 대한 내용을 좀 더 부언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죽간에 대한 한글로 번역된 안내서로는 임형석선생의 『중국간독시대. 물질과 사상이 만나다』 (책세상, 2002년)가 일목요연하다. 그리고 중국에서의 묘 발굴에서 얻어진 것에 대한 것으로는 이학근(李學勤)선생의 『잃어버린 고리』(임형석 옮김, 학연문화사, 1996), 중국의 고대 서사(書史)에 대해서는 전존훈(錢存訓)선생의 『중국고대서사』(김윤자 옮김, 동문선, 1990년), 종이의 역사에 대해서는 김순철선생의『종이 역사』(예진, 2001년) 마왕퇴본과 곽점본 노자는 Robert G. Henricks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각각 1989년과 2000년에 각각 출간된바 있다.

학문적으로 가치가 있는 관련된 인터넷싸이트로는 중국 홍콩중문대학(香港中文大學)의 곽점초간자료고(郭店楚簡資料庫) (http://bamboo.lib.cuhk.edu.hr)과 형초문화망(荊楚 文化網) (http://chu.jznu.net) 이 있고, 이 두 곳에서 곽점본 노자의 내용을 볼 수 있다. 또 죽간, 백서(비단에 쓴 글 또는 그림)에 대한 종합 연구 싸이트인 죽백연구망(簡帛硏究網站) (http://www.bamboosilk.org)가 있다. 지면 상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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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3 0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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