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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위기와 잠정적 유토피아> 강의 요약, 홍기빈 박사

 

 

1. 들어가며

- 지금의 세계경제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과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제 끝장났다는 주장은 위험하다. 그런 식의 접근보다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조직원리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결국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성공했던 케이스를 찾아봐야 한다.

- 30년대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유일한 케이스로 비그포르스의 정책 외에는 난 모르겠다. 케인즈주의의 뉴딜정책도 다시 공황을 불러왔다. 사실상 2차대전, 즉 전시경제체제 덕에 공황에서 탈출했다고 봐야한다.

 

 

2.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결정론

- 비그포르스가 극복하려던 이데올로기는 2가지로 1) 자유주의와 2) 마르크스주의다.

- 마르크스주의를 거칠게 비판해보겠다. 흔히 경제결정론이라 부르는 데, 맞다. 그게 맑스주의다. 19세기 마르크스주의가 사상적으로 경쟁해야 했던 2가지 이론이 있었는데, 1) 바쿠닌의 아나키즘, 2)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국가사회주의다.

- 1) 바쿠닌의 경우, '즉각봉기로 즉각 때려부수자'로 요약되는 테제를 내세웠다. 즉 국가없는 사회로 이행하자는 것이었고, 2) 라살레의 경우, 현실적으로 자본에 맞설 유일한 힘으로서 국가를 긍정했다.

- 맑스-엥겔스는 이 두 이론을 비판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필연성”을 주장했다. 즉, 사회체제라는 것이 발전의 단계가 있으므로 없애는 것도 순서가 있다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본가의 사적소유를 철폐하여 노동자가 국가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주장으로 내세운 것이다.

- 이를 두고, 맑스주의자들은 ‘역사의 운동법칙(law od motion)을 발견’했다고 맑스를 추앙하고, 이는 마치 다윈이 생물의 진화 법칙을 규명해낸 것과 같이 역사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라고 떠들었던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바쿠닌과 라살레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실제, 맑스주의자들은 이러한 믿음에 기초하여 19세기가 끝나기 전에 자본주의는 붕괴하고, 혁명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곧 무너질 체제이므로, 자신들이 할 일은 혁명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복지국가니, 기본소득이니 하는 이야기는 이른바 ‘개량’이고, 이러한 기회주의적 시도를 제압하는 것을 사회주의 정당의 임무로 보았다.

 

 

3. 독일 사민당과 베른슈타인

- 문제는 자본주의가 붕괴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갈수록 경제는 호황기를 맞고, 노동자도 혁명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가 굳어지게 되었다.

- 그 와중에 독일 사민당의 지독한 위선에 비판을 가하며 등장한 인물이 베른슈타인이다. 그는 상당히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가 보기에 당내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는 곧 망한다’는 믿음만을 되풀이하거나 여전히 ‘헤겔 변증법이 어쩌구 저쩌구’만 반복하기만 하면서 정작 하루 하루 당을 어떻게 조직할지, 매일 매일의 정책적 판단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 이에 대해 베른슈타인은 1) 마르크스주의의 ‘사적 유물론과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는 과학적 합리성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 그런식으로 혁명을 기다리는 것 자체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 그 다음 벌어진 일은? 맑스주의자들이 베른슈타인을 밟기 시작했다. 개량주의자, 수정주의자! 너는 맑스주의를 잘못 이해했다! (이런 식의 논리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즉, 맑스주의를 비판하면, 그건 본래 맑스가 얘기했던 것이 아니고, 네가 말하는 것은 속류 맑스주의다라는 식의...그럼, 대체 맑스주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실체가 있는 이론이기는 한가? 끝도 없는 논리, 한없는 논리, 유령논리가 되어버렸다. <공산당 선언>을 빌어 이야기한다면 맑스주의가 진짜 유령이다!)

 

 

4. 마르크스주의의 파산

- 1917년 제2제국이 붕괴하면서, 독일 사민당에게 더 큰 도전이 왔다. 여당이 된 것이다. 혁명만을 바라보던 정당이 수권정당이 되면서, 이른바 행정을 하게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민당은 혁명정당도 되지 못했고, 유능한 정당도 되지 못했다.

- 가장 큰 이유는 맑스주의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각본(자본주의 붕괴-노동자 각성-프롤레타리아 독재 등으로 이어지는)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각본대로 되지 않으면 현실(정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파산이다.

 

 

5.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치명적 한계

-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실업률이 20-40%까지 치솟았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자유주의와 맑스주의의 처방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다.

1) 자유주의 - 아무 것도 하지 마라. 경기부흥정책은 회복을 오히려 더디게 한다. 복지재정도 안된다. 그냥 시장이 해결하도록 놔둬라.

2) 맑스주의 - 지금 벌어진 공황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단, 이게 자본주의 종말이라 한다면, 전면적 사회화와 국유화에 착수해야 한다.

- 놀라운 것은 대공황이라는 위기 상황 앞에서 자유주의와 맑스주의의 처방이 본질상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 정당들에게 ‘실업대책’과 같은 단기 대책은 중요치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 둘의 공통점은 ‘법칙’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법칙’(시장)과 ‘역사법칙’(사적 유물론).

- 결국 1932년 선거에서 나치당의 집권을 가져오게 된다. 나치의 공약은 단순했다. ‘일자리와 빵’

 

 

6. 비르포그스와 잠정적 유토피아

- 요컨대, 자유주의와 맑스주의 경제학은 대공황을 뚫고 나갈 매뉴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비르포그스의 핵심이론인 잠정적 유토피아를 소개하겠다.

- 잠정적 유토피아는 객관적, 선험적 역사법칙을 끌어내지 말고, 지금 여기있는 사람들의 열망에서 유토피아를 끌어내려는 시도이다.

- ‘유토피아’란 말을 생각해보자. 이상적 담론이 듣는 질문. ‘과연 현실성이 있냐?’ 당연히 없을 수 밖에. 유토피아는 정의상 현실성이 없다. 항상 비현실적이란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

- 그렇다고 어떤 정당이 현실주의 노선을 채택한다고 했을 때, 대개 특별한 이상적 모델 없이 현실에서 요구되는 이런 저런 정책을 펼치고 만다. 민주당을 보면 그렇지 않나. 박근혜의 공약보다 더 뚜렷하게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나. 이게 현실주의 정체의 한계이다.

- 유토피아, 이상사회를 가진 진보정당은 등대정당, 횃불정당으로 찍히고, 반대로 현실주의 노선을 취하면 기회주의 정당으로 찍히는 것이 딜레마이다.

- '잠정적 유토피아' 개념은 이를 해결하고자, 우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어떤 열망이 있는지 찾고, 특히 그중에서 네거티브한 열망, 다시말해 ‘제발 이 꼴만은 안봤으면’하는 소망들을 조직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열망은 매우 구체적일 수 밖에 없다.

- 우리사회의 경우, ‘의료걱정, 교육걱정, 집 걱정없는 세상’ 이렇게 접근하면 눈이 확 띄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네거티브한 열망을 찾아서 이들이 모순되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 시스템을 미래의 사회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 그 시스템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내적 논리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해낸다면, 그것은 대중들에게 구체적 상상력과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운동으로 터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 비그포르스는 잠재적 유토피아를 ‘청사진이 아니고 길잡이’라고 했다. 비그포르스가 보기에 맑스주의는 '청사진'이었다. blue print. 건물 짓기전에 모든 게 딱 짜여져있고, 일꾼들은 시키는대로 일해서 건물을 완성하는 식의. 치명적 문제는 2가지. 1) 현실이 청사진대로 안 흘러가면 어떻게 되나? 2) 건물 다 만들어졌는데, 나 거기 들어가서 안 살래 이러면?

- 그에 비해 잠정적 유토피아는 ‘길잡이’다. 지금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열망에서 출발했기에 그들 스스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기폭제 구실을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몇 십년 몇 백년 후에나 찾아올 낙원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 비그포르스

 

 

7. 나라살림의 정치경제학

- 앞서 말한대로, 비그포르스는 자유주의와 맑스주의 경제학의 한계를 비판하며 자신의 이론을 구축했다. 그것이 바로 플란후스호닝(planhushallning - 스웨덴어)이다. 앞의 플란은 plan이고, 뒤의 후스호닝은 householding, 즉 집안살림이다. 비그포르스 경제학의 핵심은 나라살림 경제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대기업, 소기업, 협동조합, 소비자, 생산자 등 다종다기한 분야의 주체들을 조직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 따라서 여기서의 plan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계획’이 아니고, co-ordinate ‘조직’에 가깝다. 또한 케인주주의식의 재정팽창을 통한 경기부양정책과도 다르다. 산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직해낼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이다. 그 결과 스웨덴은 30년대 초반 잠깐의 적자재정 이후에는 균형재정을 유지했으며 경기 회복에도 성공했다.

- 이러한 플란후스호닝이라는 기틀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복지국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 하면 복지국가부터 떠올리는데, 그 이전에 비그포르스라는 이론가이자 정책가가 있었고, 전 사회적 혁신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글을 제대로 읽어보시려면 프린트를 하셔야 할 겁니다. 강의 내용을 거의 다 옮겨 놓아버렸네요. 그만큼 하나도 빠뜨릴 부분이 없는 명강의였습니다. 저는 이번 강의를 통해 맑스주의의 역사결정론의 한계를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유토피아는 아래로부터의 열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 어렵지도 않은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가지고 SNS 등에서 사람들의 열망들을 모아보는 실험을 해보는 것도 의미있겠다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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