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지각을 하는 썩 좋지 않은 습관을 갖고 있는데, 어제만큼은 일찍 길을 나섰다. 왠지 늦게 가면 자리가 없을지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예상대로 강연장은 30분전부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200명이 넘는 인원이 와서 별도의 공간에서 TV중계까지 해야 했단다. 일간지 광고 없이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저자 강연회에 참가자들이 넘쳐나는 이 사실을 삼성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김용철 변호사는 달변가였다. 말을 아끼는 것 같으면서도 핵심을 이야기할 때는 거침이 없었다. 그 핵심이란 ‘삼성 이건희가의 조직적 비리와 그것을 비호해주는 엘리트집단’이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이며, 나머지는 '가십(gossip)'기사 거리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언론에서 지나치게 가십성으로 이건희 일가의 ‘특별한 취미’를 부각시키는 것이 못마땅한 듯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부분의 문제를 전체와 혼동하지 않기를 바랬다. 20만명에 달하는 삼성의 대부분의 임직원은 뇌물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강연회에는 2~30대 젊은 참가자들이 많았는데, 김 변호사는 삼성에 취직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기를 당부했다. 자신은 아주 특수한 경우일 뿐,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여서 고민할 정도의 자리에 오른다면 성공한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아마도 도덕적 근본주의로 이 문제를 접근하지 않았으면 하는 의도로 읽혀졌다.

“30대 이하에게는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 변호사가 강연 도중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책을 읽고 아직 희망을 꿈꿔야 할 젊은 세대들이 세상을 냉소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만큼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온갖 탈법과 비리, 그리고 돈 앞에서 한없이 연약해지고 마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나는 아직 책을 절반 정도 읽은 상태이다) 김 변호사의 ‘우려’가 이해될 법도 했다.

강연이 끝날 즈음, 한 참가자는 ‘이제 공인이 되셨는데, 삼성 문제해결을 위해서 김 변호사가 좀 더 많은 역할(정치를 포함해서)을 할 계획이 있는지’ 일종의 ‘주문’ 성격의 질문을 했다. 그는 단호하게 (약간은 불쾌하게) 공적인 역할을 맡는 것에 선을 그으며 ‘한 개인으로서 이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모두의 고개가 숙여지는 답변이었다. 그 답변을 통해 김 변호사는 이제야말로 깨어있는 시민들이 용기를 내고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에게 되질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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