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세상을 넓게 보는 그림책 2
안느 에르보 지음,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화책을 읽다보면 참 마음이 바빠진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색감을 살피랴, 글자를 읽으며 내용을 감상하랴, 혹시 하나라도 빠뜨리면 어쩌나 싶어서 그림 구석구석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면서 다음 장에는 또 어떤 그림이 펼쳐질까 궁금해져 빨리 책장을 넘기려는 조바심도 생겨난다.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치 화폭같이 넘어가는 시원스럽게 큰 사이즈의 책으로 페이지마다 독특한 색과 선으로 둘러싸여진 개성있는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연필로 서투르게 그린 그림 위에 환상적인 색의 옷을 입힌 듯한 그림은 벽에 걸려 멈춰버린 미술관의 그림보다 더 가깝게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느끼게 해준다. 서사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철학적인 내용의 글이기에 곱씹어가며 여러번 반복하여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시간의 성에서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하며 사는 꼬박꼬박 아저씨는 어느 날 꼬마괴물 빼쭉이와 바깥 세상을 구경하러 간다. 이야기 마녀가 만들어 놓은 갖가지 항아리 속에 담긴 이야기를 실컷 맛보고는 마법의 실패 즉 빨간 이야기 실을 훔쳐서는 달아나다 나무 속에 숨는다.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다섯 개의 동그란 물건-방울, 시계, 살구, 사과, 알-은 호기심을 가득 채운 상상력을 유발시킨다. 소리 괴물이 살고 있는 다양한 소리가 들려오는 방울, 초바늘 군대가 지나가는 시간의 숲의 시계, 여러 가지의 사랑에 빠진 작은 악마들이 사는 살구, 두꺼비집을 망쳐버린 푸른 사과, 커다란 그림자를 가진 마법의 알은 각기 신비롭고 희안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아직 실이 조금 남았지만 이야기 실패는 원래 주인인 이야기 마녀에게 돌아가고 꼬박꼬박 아저씨와 뻬쭉이는 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마녀라곤 하지만 두 갈래로 늘어뜨린 머리 모양에 빨간코를 가진 이야기 마녀는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귀여운 소녀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꼬마 괴물이나 작은 악마 또한 조그마한 몸집에 화살표 꼬리를 달고 있어 익살스럽고 유쾌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슬픔이나 두려움, 공포 같은 부정적인 정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나라이다.

세상 어는 곳에나 존재하는 이야기. 새들의 이야기, 바다 이야기, 음악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와 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매일 숨을 쉬듯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 모두의 '역사'가 되는 소중한 이야기 실패를 완성하게 된다. 완성이란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매듭을 의미한다. 새로운 출발로 나아가는 중간의 개념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야기의 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