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주장법
허진희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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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은 소설가의
”미스터리 스릴러이면서도 막무가내식으로 섬뜩하지 않고,
피비린내가 진동하지 않는다. 다만 진중하고 우아하다.“라는
추천사에 선뜻 동의될 정도로
잔잔한 문장 속에 파워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서평단에 응모할 때에도 가장 큰 이끌림을 주었는데
추천사를 증명했다고 본다.
일제 강점기라는,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허진희 작가님도,
그것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고 추천한 배명은 작가님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시대적 배경 때문이겠지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본 경성 거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소설 읽기가 재미난 이유 중의 하나가
글로 쓴 문장을 읽으면서도
눈앞에 풍경과 인물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는
같은 시대적 배경의 영상까지 떠올려지니 생생함이 더했다.
상상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콜라보가 즐겁다.

소설의 흐름과 크게 관련한 문단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옮겨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군산댁인데,
그 인물이 고른 집터와 짧은 행동거지 묘사를 통한 설정이
탁월하게 느껴진 대목이다.

돈이 없이 궁색하다 뿐이지 군산댁이 원래 눈썰미나 요령이 없는 사람은 아닌 듯했다. 집 자체도 여러모로 알맞춤인데, 집의 위치 또한 딱 좋지 않은가. 토막촌의 밀집된 골목에서 떨어져 있되 가까운 거리에 이웃을 하나 두었고,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춘 야트막한 야산도 접해 있으니 살기에 좋은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오늘 희비가 실행할 계획을 위해서도 좋지 않던가.
"흥. 나가 주는 물 마셔서 좋을 게 없을 꺼이다! 천붕대 물이 그짝 속에 맞기나 헐랑가?"
군산댁은 차돌 들으란 듯 희비에게 더 모질게 대꾸하면서도 뱉은 말과는 딴판으로 몸을 움직여 물동이 뚜껑을 열었다.
"난중에 탈 나도 나는 모르능 기요!"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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